
17년 전 2008년은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내놓고 딱 1년 후였다. 우리나라에서 아이폰은 2009년에야 상륙했다. 국내에서 아이폰을 통한 스마트폰 대중화 시대가 본격 만개하기 직전이던 2008년 한 할리우드 영화에 LG전자의 휴대전화가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바로 ‘아이언맨’이었다. 주인공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등장인물들이 즐겨 쓰며 영화에서 계속 노출하던 LG전자의 휴대전화인 VX8600과 VX9400이었다. 내막은 당시 영화사가 아이언맨을 제작하면서 자금난에 시달려 LG전자 등 국내 기업의 투자를 받으면서 한국 제품이 등장하게 됐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마블 시리즈의 첫 작품이었다. 이 영화의 흥행을 시작으로 ‘어벤져스’ 시리즈 등 다양한 작품들이 잇달아 제작되면서 전 세계 극장가를 휩쓸기 시작했다.
반면 첫 시리즈에 등장한 LG전자의 휴대 전화는 이후 어벤져스 시리즈에서는 점차 사라졌다. 아이폰 등장 이후 휴대전화 기기 시장이 스마트폰으로 급격하게 재편되면서 경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 진출해 모토롤라, 블랙베리 등 기존 강자들과 대등한 경쟁을 펼치던 LG전자였다. 1990년대 사이언, 2000년대 들어 초콜릿폰, 프라다폰 등 개성 넘치는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이른바 피처폰(스마트폰 이전 기능형 휴대전화기) 시장에서 통하는 정상급 휴대전화 제조사였다. 그러나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내놓는 제품마다 흥행에 실패하면서 지속적인 실적 부진으로 누적 적자는 약 5조 원에 달했다. 결론은 철수였다.
2021년 7월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4년이 지난 올해 6월 30일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후 서비스(AS)까지 모두 종료하면서 공식 AS를 포함한 모든 지원까지 중단했다 1995년 휴대폰 사업을 시작한 지 30년 만에 더 이상 휴대전화와 관련된 LG전자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철수 선언 당시만 해도 LG전자의 전격적인 스마트폰 사업 철수 결정에 찬사 일색이었다. 과감하게 수익성 악화 주범인 스마트폰 사업을 정리함으로써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아질 거란 예상도 나왔다. 반면 과포화된 스마트폰 시장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미래 먹거리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는 분야를 쉽게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LG전자 스마트폰 애용자들의 원성도 상당했다.
현재 LG전자는 프리미엄 가전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전제품 중 모든 사람들이 하나씩 반드시 소유하고 있는 데다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스마트폰을 LG전자만 생산하지 않는다는 건 여러모로 아쉽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스마트폰은 필수품이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기존 가전제품과의 연결은 물론, 기존 화폐 기능에 가상화폐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투자하고 결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여기에 최근에는 AI(인공지능)까지 장착하기 시작했다. AI는 반도체 이후 새로운 먹거리로 인식되고 있다. 더구나 AI로 기존 ICT(정보통신기술) 업계 판도를 바꿀 수 있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온라인 플랫폼이 된 구글과 애플은 각자 독자적인 소프트웨어인 운영체제를 통해 삼성전자 등 스마트폰 제조사보다 더 많이 벌어들인다. 애플도 아이폰 판매보다 iOS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거둔지 오래다. 그런데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기존 운영체제 시스템마저 대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LG AI연구원은 최근 국내 첫 하이브리드 인공지능(AI) 모델이라며 ‘엑사원(EXAONE) 4.0’을 공개하며 엄청난 기능들을 소개했다. LG가 그룹 차원에서 국내에서는 독보적으로 AI 모델에 대규모 투자와 연구를 아끼지 않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좋은 기술도 소비자들이 직접 써보고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에 대한 반응을 보이면서 시장에서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해당 기술을 스마트폰, 자동차 등 기존 제조사에 팔아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사 스마트폰 없이 AI에 투자하고 연구한다는 건 뭔가를 크게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내기 어렵다.
<한준호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