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개인화· 파편화되는 사회 구조에 기름을 부었다. 기존의 공동체 사회가 붕괴하면서 개인 단위로 조각조각 나뉘었고, 서로 이름도 모른 채 고립된 섬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초개인화’를 넘어 ‘초나노(nano)사회’가 급격하게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변화는 큰 혼란을 가져왔고 이러한 혼돈 속에서 질서를 잡게 해준 것은 디지털 기술이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창간 16주년을 맞아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산업 트렌드를 진단해봤다.
디지털 기술력은 초나노사회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 됐다. 불특정 다수인 소비자를 위한 보편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는 끝났다. 개개인의 구체적인 성향을 초 단위 실시간으로 분석해 소비 활동에 이르게 하는, 일종의 ‘빅 브라더(big brother)’처럼 프로세스 전반을 지배해야 살아남는 세상이 됐다. 스마트폰에 탑재된 심박센서· 동작감지 센서 등에서 수집된 정보도 기업의 마케팅에 활용되고 있다. 맞춤형 경험을 창출하는 브랜드는 그렇지 않은 브랜드보다 매출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OTT(Over The Top: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산업이다. 구독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는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기업들은 알고리즘을 이용한 철저한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로 공중파 방송국 등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의 장벽을 허물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디지털 전환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를 융합한 기술의 혁신과 활용이 미래 사회를 지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코로나로 인해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는 추세를 고려해 개인별 맞춤이 가능한 비스포크 시리즈를 선보여 큰 성과를 냈다.
비대면 생활이 길어지면서 실재감 테크(Extended Presence Technology)도 미래 핵심기술로 부상했다. 라이브 커머스, 메타버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메타버스 공간에서 활약하는 가상 인간 로지는 나이 22세, 키 171cm, 서울 출생으로 1년 만에 1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로 성장했다. 신한라이프 외에 쉐보레, 마틴골프 등 연달아 광고 계약을 맺는 등 광고업계와 뮤직비디오 출연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며 MZ 세대로부터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 수입만 1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메타버스 서비스는 오프라인과의 괴리감을 없애고 누구나 쉬운 접근이 가능하게 하는 ‘실재감 기술’이 성패를 가른다. 실제감은 인터페이스의 접근성과 서비스 구현의 속도가 핵심 요소다.
네이버의 제페토는 전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메타버스 기반 서비스다. 2억4000만명의 누적 가입자를 보유한 제페토는 폭발적인 이용자 증가와 함께 라이브, 게임과 같이 새로운 기능들이 추가되면서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제페토는 참여자들의 실시간 소통, 상거래, 공연 관람 등을 ‘실제감’있게 구현해 기존 아바타 이용 서비스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실제로 K―POP 아이돌과 제페토가 협업한 콘텐츠는 또 다른 차원의 팬덤을 만들고 있다. 지난 2월 설 연휴 한류스타이자 한국관광명예홍보대사인 걸그룹 있지(ITZY)는 제페토에 마련된 가상의 한강공원에서 팬미팅을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있지 아바타들과 팬들은 마치 오프라인 행사처럼 실시간으로 교감하며 팬 셀카회를 진행했고, 보트 타기, 스케이트보드 타기 등 한강공원의 다양한 가상체험들을 즐겼다.
한국 관광공사는 작년 11월 제페토에 한강공원 맵을 구축하고 Z세대를 대상으로 다양한 홍보이벤트를 펼쳤다. 그 결과 10일 현재까지 약 2790만명이 한강공원맵을 이용했다. 이용자들이 직접 제작한 한국관광 콘텐츠는 1만 여건에 이른다.
메타버스는 이동통신 업계에서도 주목받는 미래 먹거리다. 박정호 SK텔레콤 부회장은 지난 3일 열린 ‘SK ICT 테크 서밋 2021’ 오프닝에서 아바타로 분장하고 나타나 이목을 끌었다. AI와 메타버스·클라우드·모빌리티 등 9개 분야, 총 114개의 기술이 등장한 이 행사에는 SK그룹 22개사가 참여해 기술력을 과시했다.
중소규모 업체가 대거 뛰어들며 메타버스 생태계는 더욱 풍성해 지고 있다.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은 지난달 동양인, 흑인, 백인 등 다인종 가상 인간 3명을 공개하고 ‘버추얼 휴먼’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이 회사는 연말까지 관련 기술 개발을 완료한 뒤 광고 모델은 물론 영화·드라마에서 연기까지 하는 가상 인간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한편, 디지털화된 초나노사회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디지털 디바이스 접근성이 떨어지는 노년층과 시각장애인 등을 고려한 서비스 개발이 필요하다. 디지털화된 ‘부캐’ 아바타가 ‘본캐’를 침식해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은 ‘매트릭스’ 등 여러 SF영화에서 다뤄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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