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 기자] “엄마가 근무하는 병원 앞 가상놀이터에서 함께 범퍼카도 타고, 누가 더 높이 타워에 올라가나 게임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엄마의 직장이 더 친근하게 느껴져요.”
최근 메타버스가 대세다. 의학계에도 메타버스 바람이 불고 있다. 경희의료원은 최근 ‘쌍방향 소통’을 목표로 메타버스 플랫폼 3종을 대학병원 최초로 동시에 선보였다.
현재 △온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게더타운 ‘경희의료원 가상 컨벤션센터’ △건강정보는 물론 의료원을 하나의 놀이공간으로 꾸민 네이버Z 내 제페토의 ‘경희 놀이터’ △의료원 역사를 한눈에 모아둔 가상현실 전시공간 아트스텝스 ‘경희의료원 VR역사전시관’ 등 3가지 채널을 운영 중이다.
최석근 경희의료원 홍보실장(신경외과 교수)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이 일상화되며, 프라이빗한 환경 제공과 종합적 정보 공유 등의 가치로 메타버스의 의료 적용 방향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며 “각 플랫폼의 특성에 맞춰 세분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3가지 채널을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전문가가 아닌 원내 홍보실에서 모두 수행해 주목받았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듯 꼼꼼하고 편리한 공간은 홍보실 직원들의 ‘첫 작품’이다. 잘 기획된 콘텐츠로 무장하면 대중에게 더 진솔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목표로 직접 제작에 뛰어들었다.
박형경 경희의료원 홍보팀장은 기획방향과 목적성만 갖고 있다면 메타버스 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이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박형경 팀장이 제페토 내 ‘경희놀이터’를, 고영우 사원이 ‘경희의료원 가상 컨벤션센터’를, 마이현 사원이 ‘VR역사전시관’ 구축의 구심점이 됐다. 모두 메타버스와는 관계 없는 ‘순수 홍보인’들이다.
이 가운데 제페토 월드에 들어선 월드 ‘경희놀이터’는 경희의료원 앞의 가상 놀이터를 콘셉트로 한다. 실제로 ‘경희놀이터’에 들어서면 경희의료원과 함께 아늑한 한옥, 벚꽃길, 도넛 정원, 관람차와 회전목마, 워터파크 등이 기다린다. 고층타워를 오르거나, 다이빙풀장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원내에 가상으로 구현된 워터파크에는 돌고래도 산다. 현실과 똑같은 병원 건물 앞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테마파크’가 꾸려진 것.
박 팀장에 따르면 이는 가상공간에서의 마음 편한 활동으로 웃음과 함께 도움이 되는 정보도 제공해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그는 “의료기관은 치료 위주의 공간이다보니 현실적으로 휴식을 위한 공간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가상공간에서라도 병원을 찾은 아이들과 부모가 아바타로 조금이나마 아픔을 잊고 마음껏 놀며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이를 구축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경희놀이터는 박 팀장의 ‘숨은 조력자’가 톡톡한 역할로 탄생했다. 건축가를 꿈꾸는 박형경 팀장의 아들인 청원초 2학년 성시완 군(8)의 아이디어가 놀이터의 토대가 됐다. 시완 군은 이제 언제든지 엄마가 일하는 가상공간으로 놀러가 만날 수 있게 됐다.
박 팀장은 “공간구성은 거의 아들의 아이디어로 이뤄졌다”며 “처음에는 백지 상태에서 어떻게 공간을 채워야 하나 막막했는데, 아들이 새로운 재미요소를 찾아 이를 토대로 함께 놀이터를 꾸며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시완 군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함께 맵에 표현하고 구체화했다. 시완 군이 아이디어를 내면 박 팀장은 세밀하게 단장되지 않은 부분들을 잡는 역할을 했다. 건물 안이나 워터파크에 채워넣으면 좋은 작은 재미요소나 세부요소를 더하는 식이다. 모자(母子)간 콤비플레이가 멋진 공간으로 거듭난 셈이다.
시완 군은 “평소 좋아하는 공간을 가상 놀이터로 옮겼다”며 “관람차, 워터파크, 회전목마 등은 놀이공원에서 즐겁게 놀던 기억을 떠올리며 엄마·아빠 친구들과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시완군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은 ‘도넛 정원’. 또, 키즈카페에서 자동차 운전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 범퍼카도 넣었다. 그는 “엄마와 함께 차를 탈 수 있어서 더 좋았다”며 “제페토에서는 엄마보다 내가 더 운전을 잘 한다”고 했다.
아이디어 구상 후 현실화하기까지 약 한달이 걸렸다. 홍보실 근무 이후 저녁시간, 주말 등에 짬을 내 투자했다. 박 팀장은 “제페토는 한번 집중해보니 매력있는 플랫폼”이라며 “한번 작업에 들어가면 재미가 붙어 손에서 쉽게 놓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다만, 처음부터 시완군과 놀이터를 구축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박 팀장은 “이번 메타버스 구축에 앞서 전문 과정 수업을 줌 화상수업으로 들었는데, 아이가 옆에 앉아서 곁눈질로 제페토 월드 구축법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왔는데, 놀이터가 빼곡하게 채워져있었다. 알고보니 시완 군이 자신의 상상대로 놀이터를 채워나간 것. 그는 “현재의 월드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 요소가 채워져 있었다”며 “그때의 놀라움과 감동은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기억난다”고 덧붙였다.
박형경 팀장은 아들이 없었다면 경희놀이터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번 메타버스 플랫폼을 접하며 이제는 아이들의 교육 방향이 기존 3D프린터·코딩에서 메타버스로 옮겨지지 않을까 한다”며 “창의적인 아이들에게 가능성이 더 크게 열리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박 팀장은 현재 경희의료원의 메타버스 채널은 고무적으로 운영되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는 “몸이 아파야 찾는 병원은 사실 오고 싶은 공간은 아닐 것”이라며 “하지만 메타버스 속에서 경희놀이터란 공간이 랜드마크처럼 부상하며 병원과 보다 친숙해진 계기가 생겨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석근 실장은 “전문가 도움 없이 홍보실에서 한달만에 각각의 플랫폼을 멋지게 선보여 무척 놀랐다”며 “제페토의 경우 프라이버시가 보호된 상태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소통하고 질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의 틀에 박힌 채널의 한계를 벗어나 대중과 좀더 친근하게 소통하며 때론 가볍게, 때론 유익한 정보를 무겁지 않게 전달할 수 있다는 플랫폼으로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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