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희 기자] #서울의 한 아파트에 사는 A씨는 거실 월패드 카메라에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사용 중이다. 지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아파트 월패드 해킹 사건’을 본 뒤 불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카메라 뿐만 아니라 월패드와 연결된 도어락, 가전제품도 해킹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월패드는 주로 신축 아파트에 설치된 일종의 홈 네트워크 기기로, 현관 출입문, 난방·환기 시설, 가전제품 등을 제어할 때 사용된다. 과거 비디오폰과 달리 일부 월패드의 경우 세대 간 통화를 위해 내부 카메라가 달려있다. 지난해 이 내부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이 대량으로 해킹, 다크웹에 유포된 것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공포에 떨었다.
비단 월패드 뿐만 아니라 가정용 CCTV, 휴대폰 나아가 기관, 국가망 등도 해킹을 통한 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은 정보통신기술 발전으로 첨단 IT기기의 온라인망 연결이 활발해지는 만큼 해킹으로부터 이를 보호할 수 있는 데이터 암호화 기술 역시 고도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29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바로 이 같은 데이터 암호 생태계 강화를 위한 ‘양자암호’ 투자에 한창이다. SKT는 최근 간담회를 통해 양자난수생성(QRNG·Quantum Random Number Generator)을 활용한 차세대 칩을 개발해 국방·공공 및 글로벌 보안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우선 SKT는 지난 2018년 인수한 양자암호통신 업체 IDQ를 비롯해 KCS, 옥타코, 비트리 등 암호분야 강소기업들과 협업을 지속하며 ‘양자암호 생태계’를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SKT가 주목하고 있는 QRNG의 핵심 키워드는 ‘양자’와 ‘난수’로 풀어볼 수 있다. 양자(Quantum)는 더는 쪼갤 수 없는 물리량의 최소 단위이다. 난수(Random Number)는 예측불가능하고, 편향되지 않으며, 앞뒤 숫자 간에 상호연관성이 없는 것이 조건이다. 즉, QRNG란 패턴 분석 자체가 불가능한 무작위 숫자, ‘순수 난수’를 만드는 장치인 셈이다.
예를 들어 본인확인 내용을 암호화해서 전송할 경우, QRNG를 사용하면 일정한 패턴이 없는 무작위 숫자가 사용되기 때문에 역추적이나 정보탈취 등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SKT는 지난 4월 이 같은 QRNG를 장착한 스마트폰 ‘갤럭시 퀀텀3’를 출시한 바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은 자체 보안 솔루션인 ‘삼성 녹스(Knox)’를 탑재하고 있으나, 퀀텀3는 은행·증권·카드 등의 거래 시 QRNG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차별점이다.
SKT는 QRNG 기술을 보다 발전시켜 국방·공공·글로벌 시장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간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양자암호 어벤져스’를 꾸리고 2024년 초 상용화를 목표로 차세대 QRNG칩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난수생성기술에 특화된 연구소를 보유한 IDQ와 영상처리 및 반도체 설계 전문회사인 비트리는 앞서 ‘퀀텀’ 폰에 내장된 QRNG칩을 협업해 선보인 바 있으며, 차세대 QRNG칩 개발 및 상용화를 위한 성능개선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엄상윤 IDQ 지사장은 “업계에선 QRNG 시장이 글로벌 기준 2026년 약 8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10년 내 8억개 이상의 IoT기기를 QRNG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엔터프라이즈 비즈니스 솔루션 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KCS는 자체 설계한 ‘KEV7’과 SKT의 ‘양자칩(IDQ250C2)’을 하나로 합치는 원칩화 과정을 올해 12월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KEV7’은 국정원의 암호모듈검증(KCMVP) 보안 2등급을 획득한 칩이다. KCS와 SKT는 ‘양자암호 원칩’으로 최고 보안등급을 획득, 추후 드론 등 국방 무기체계사업, 한전 등 공공기관 사업, 월패드 등 홈네트워크 보안 시장 등의 진출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벤처기업 옥타코와의 협업도 기대감을 높인다. 옥타코는 ‘FIDO(Fast IDentity Online)’, 즉 생체인식 기술을 활용한 인증 분야에 특화된 기업이다. FIDO 기술을 활용한 자체 지문인식 보안키 ‘이지퀀트’에 QRNG를 적용, 세계 최초의 ‘양자난수 FIDO 지문 보안키’를 개발 및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김동우 SKT 혁신사업개발1팀 리더는 “QRNG 개발에는 다양한 부품과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SKT 혼자 힘만으론 성공할 수 없다”며 “강소기업들과 협력을 바탕으로 아직 초기 단계인 양자암호 생태계를 키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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