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목소리를 들어라 <下> ] 신제품 개발에도 행정적 지원 없어 '허송세월'

시장 진출 가로막는 규제 많아… 신사업 창출시 제도적 뒷받침 필요

[정희원 기자] 정부가 최근 벤처·스타트업의 규제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를 토대로 글로벌 유니콘 기업을 육성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신기술을 개발해도 행정적 지원 부족 등으로 제품 상용화에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등 각종 규제로 경쟁력이 되레 약화되는 사례가 다반사다.

 

23일 스타트업계에 따르면 이들은 과거 정부 시절에도 꾸준히 규제 완화를 호소해왔다.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부터 “신발 속 돌멩이 같은 불필요한 규제들을 빼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와 관련 새 정부는 혁신·성장형 지원 프로그램 비중을 늘리고, 연구개발 재정 지원도 고성장기업의 ‘스케일업’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특히 벤처업계가 염원하던 복수의결권 도입도 추진한다. 복수의결권이 도입되면 창업자가 안정적인 경영권을 바탕으로 회사를 키울 수 있다. 이와 함께 기업이 우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스톡옵션 행사 이익에 대한 비과세 한도를 현 5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벤처·스타트업계는 이에 대해 환영하지만 기업 운영 시 느끼는 실질적 어려움을 현장에서 듣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도 입을 모은다.

 

업계가 느끼는 어려움 중 하나는 신산업 창출 시 혁신기술 활용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한 것이다.

 

가령 A사는 이동형 로봇 생산설비 구축을 계획 중이나, 도로교통법에 따라 자율주행로봇의 보도주행이 금지돼 있다. 규제샌드박스로 추진 중인시범사업에서도 현장요원(운전면허증 소지)이 요구돼 과도한 비용이 유발돼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협동로봇·이동형로봇 등에 대한 안전기준을 마련해 혁신기술이 산업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자율주행로봇 실증특례에서도 원격 모니터링이 가능토록 기준완화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신속·유연한 행정 지원에 대한 갈증도 크다. 업계는 최적 투자부지 확보를 위한 전략산업 우대, 국유지 이용허가 등을 요청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예컨대 B사는 수송기계 공장 구축할 계획으로 기업보유토지와 맞닿은 소유필지가 국유지로 묶여 있어 충분한 공장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느낀다. C사는 에너지저장장치 생산시설 증설에 나서고 싶지만 부지 인근에 대학 설립예정지가 있어 최대 6개월이 소요되는 교육환경평가를 진행해야 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 신시장 진출을 제약하는 불필요한 규제도 혁파할 것을 약속했다.

 

소규모 스타트업들도 애로사항이 존재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번 정부의 규제 혁파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놓치기 쉬운 요소들도 분명 있다고 입을 모은다.

 

주류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D씨는 “소규모 주류제조업체를 운영하다보면 구시대적 주세법 및 주류 면허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규제들에 애로사항이 많다”고 토로한다. 

 

2020년 1월 맥주의 경우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된 이후 세금의 감소도 크지만 출고가 신고라든지 출고가 자율조정 등이 편리해졌다. 반면 리큐르의 경우 아직 세율이 높고 반드시 주류도매상을 통해서만 거래가 가능하고, 판매처마다 가격을 달리할 수 없는 점 등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가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D씨는 “세계적인 주류 시장의 과세 흐름은 주류의 양에 대한 과세나 알코올분에 대한 과세가 많고 이에 고급주류들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어 주류 문화가 발전했지만, 한국은 아직 주류마다 주세가 모두 같아서 결국 원부재료비용이 저렴한 술만 대량생산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수제맥주 온라인 판매 허용 문제는 현재 수준의 고도화 된 본인인증 기술 등에 비춰보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실제 의사결정자들에게는 와닿지 않아 규제 혁파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도 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 종사자는 ‘우리사주 판매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우리사주를 받을 때 일한 것에 대해 나중에 보상을 받는다 셈치고 시간과 능력을 투자하는 상황”이라며 “이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면 결국 해당 회사에서 몇 년을 버티거나, 아니면 바로 퇴사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결국 우수인력이 유출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스타트업은 회사의 초기 히스토리부터 이해하는 우수 인력이 전부인데, 노력을 보상받을라면 퇴사해야되는 아이러니에 놓인다”며 “결국 스타트업은 이같은 문제로 유출되는 인력을 막지 못하고, 과잉 복지혜택을 남발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는 고정비 상승으로 올라가게 되는 요인이다. 개발자 인력난도 이같은 맥락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happy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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