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비즈=주형연 기자] 오는 12일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을 앞두고 국내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들이 퇴직연금 고객 유치전에 앞장서고 있다. 업계에선 금융투자업권으로 머니무브가 이뤄질 수 있을 지 주목하고 있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와 금융위원회는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 디폴트옵션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디폴트옵션이란 확정기여(DC)형,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가 예·적금 등 상품의 만기가 도래했는데 별도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사용자와 근로자가 사전 합의한 디폴트옵션 상품에 투자하는 제도다.
현재 거론되는 승인 상품 개수는 판매사별로 최소 7개에서 최대 10개로 한정되며 위험등급별로 상품을 구성해 심사를 받아야 한다. 펀드 유형은 타깃데이트펀드(TDF), 밸런스펀드(BF), 스테이블밸류펀드(SVF), 사회간접자본(SOC) 펀드 4종이 가능하며 펀드로만 구성할 경우 TDF 혹은 밸런스펀드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단 IRP형은 가입자가 자유롭게 디폴트옵션을 지정할 수 있는데 비해 DC형은 노사가 합의해야 한다.
디폴트옵션 도입을 앞두고 운용사들은 특히 TDF 상품을 늘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TDF는 투자자 은퇴 시점에 맞춰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비중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자산배분형 상품으로, 연금투자에 최적화한 상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TDF 시장의 42%(3조4119억원)를 점하고 있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자산군에 따라 크게 두 종류의 TDF를 운용하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은 미국 캐피탈그룹과 함께 개발한 ‘한국형 TDF’와 자사 ‘상장지수펀드(ETF)를 담은 TDF’를 출시했다.
KB자산운용은 해외 운용사인 뱅가드 협업으로 패시브 중심의 ‘온국민 TDF’를 출시했고 한국투자신탁운용은 미국의 티로프라이스를 통해 ‘TDF 알아서’ 펀드를 위탁 운용 중이다. 신한자산운용도 ‘마음편한 TDF’와 ‘장기성장 TDF’로 두 상품을 갖고 있다.
지난달 30일 삼성자산운용·키움투자자산운용·한화자산운용은 TDF 액티브 ETF 관련 10종목을 유가증권시장에 동시에 상장했다. 이에 현재 TDF를 운용하는 운용사는 16개사다.
증권사들은 퇴직연금 관련 앱을 개편하거나 연금 제휴 서비스를 탑재하는 등 시스템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퇴직연금 전용 앱을 전면 개편해 자산을 보다 편리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KB증권은 이루다투자일임의 든든(DNDN) 앱에 오픈 API 기반 비대면 연금 제휴 서비스를 탑재하기도 했다. 미래에셋증권도 기능별로 나눠져 있던 3개 앱을 하나로 통합한 새로운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선보였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적극적인 운용에 따라 수익률 제고를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원리금보장형 상품’ 쏠림 현상이 극심했던 국내 퇴직연금 시장도 실적배당형으로 이동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작년 말 전체 적립금 295조6000억원 대부분이 원리금 보장형 금융상품에 쌓여 최근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2.7%, 지난해 수익률이 2%에 그친 국내 퇴직연금 수익률에 지각변동을 가져올지 주목된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리금보장상품의 지정을 허용함에 따라 가입자 교육이 중요해졌고 디폴트옵션 펀드의 경쟁력 제고라는 과제를 남겼다”며 “국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과 시행령에 적립금 운용에 대한 가입자 교육을 명시하고 있는 만큼 이 부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폴트옵션이 도입된다 해도 퇴직연금 시장이 변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짐에 따라 투자심리가 안전자산으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준금리 상승세와 더불어 주식시장 하락세가 겹치며 일평균 거래대금 규모는 줄어든 반면 예적금 규모는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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