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갈 곳도 없는데”…LH 순살 아파트 파문, 피해는 사회적 약자 몫

LH가 시공한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보강공사를 위한 잭서포트(하중분산 지지대)가 설치돼 있는 모습. 뉴시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전국 15개 아파트 단지에서 ‘철근누락’이 발견돼 파문이 커지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결국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인 개인이 되는 형국이다. 

 

 LH는 이미 2021년 3월 임직원 부동산 투기 파문으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고 쇄신에 나섰지만 또 다시 이번 철근누락 사태 발생의 원인제공자로 밝혀져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덕성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불안감에 휩싸인 해당 단지 입주자·입주예정자들의 하자 민원 및 대규모 계약 해지 움직임까지 예상된다. 

 

◆사회적 약자 위한다더니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철근 누락 LH 공공주택단지 현황 및 조치계획’에 따르면 무량판 구조 지하주차장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조사된 단지는 15곳이다. 10곳은 임대아파트, 5곳은 분양아파트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공주택단지의 안전불감증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국민은 더 분노하고 있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철근 누락이 언급된 단지는 청년층과 신혼부부 등 생애 최초 주택구입이나 주거 취약자들을 위한 공공주택이라는 게 문제”라며 “이들이 보금자리를 해결했다는 안도감이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는 불안감으로 바뀐 셈이기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국민의 날 선 시선을 느낀 국토부와 감사원 등 정부 관계기관은 이번 사태가 LH 조직 내에 뿌리 깊은 ‘전관예우’ 관행으로부터 비롯됐다고 보고 계약일정 연기 등의 조치와 함께 전관 커넥션을 차단하기 위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발 빠른 대책발표

 

 감사원이 지난해 6월 LH의 불공정 계약 실태를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1월부터 2021년 3월까지 LH의 3급 이상 퇴직자 604명 가운데 계약업체 재취업자는 304명(50.3%)으로 절반이 넘었다. 감사원은 이런 상황이 전관예우에 따른 불공정 계약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보고서에서 LH가 공동주택 설계·건설사업관리 용역 등 입찰에 참여한 업체의 사업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심사평가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자사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가 공모 기간 또는 심사 직전 평소 알고 지내던 내부위원과 사전 접촉했는데도 감점 등의 제재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재 LH는 비난의 벼랑 끝에 몰린 신세다. 그래서일까, 철근 누락 발표 이틀 후인 2일 강남구 논현동 서울지역본부에서 건설카르텔과 부실시공 근절을 위한 책임관계자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결과를 발표했다.

 

 이한준 LH 사장은 “부실시공에 대한 질타는 물론 전관특혜 의혹을 강하게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에 건설안전을 제대로 확립 못하고, 설계·감리 등 LH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특혜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LH의 미래는 없다는 각오로 고강도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LH는 부실시공 설계, 감리업체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이번 15개 단지 부실시공 업체에 대해서도 고발과 민사소송 등 법적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또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를 실시해 설계·심사·계약·시공·자재·감리 등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의 전관예우, 이권개입, 담합 등 부실설계와 부실공사 유발 원인을 근절하겠다는 방침이다.

 

 LH 관계자는 “당사는 대한주택공사부터 60년이나 된 조직이고 퇴직자들이 곳곳에 나가 있어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기가 쉽지 않다”며 “그럼에도 자성 노력과 함께 쇄신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속도감 있게 개선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뢰잃은 양치기 LH

 

 2021년 LH 임직원 부동산 투기 파문으로 이미 각종 제도 개선 방안을 실천했음에도 이런 사태가 또 벌어졌기에 과연 제대로 조직을 추스르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기관으로 거듭날지는 의문이다. 

 

 국민의 분노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번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해 시공사의 이름을 전면 공개한 것을 두고 건설업계는 불편하다. 사과는 LH가 하고 비난은 시공사가 받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미 현장에서도 시공상의 불편함과 위험성으로 무량판 구조 적용을 외면하고 있지만, 발주처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라며 “시공사가 설계·감리 상의 부실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마치 모든 게 시공사 잘못으로 비칠 수 있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LH는 부실이 확인된 입주단지들을 상대로 일일이 설명회를 열어 보강 일정을 안내하고 정밀안전진단을 공지하는 등 신뢰 회복을 위해 힘쓰고 있지만 지켜보는 이들의 시선은 냉랭하기만 하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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