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의무 소각’ 초읽기] 더 세진 상법에 주주 보호vs 경영권 위협 '공방'

與, 자사주 취득 1년 내 소각 법안 발의
상의 "소액주주 단기 이익 추구, 기업 투자·R&D 등 차질 우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6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72인, 찬성 220인, 반대 29인, 기권 23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한국 자본시장에 큰 획을 그을 상법 개정안을 두고 정치권과 일부 기관투자자, 재계 등에서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사주를 1년 내 소각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일반 주주를 보호하는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재계는 법 개정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경영권 위협, 줄소송, 신사업 위축 등이 나타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난 9일 김남근 민주당 의원은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원칙적으로 1년 이내 소각하도록 하고 예외적으로 임직원 보상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보유를 허용하되, 반드시 직후 정기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도록 한다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때 대주주의 의결권은 발행주식 총수의 3%로 제한함으로써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도록 했다.

 

김 의원은 “실제로 자사주 비율이 10%를 초과하는 상장사는 216개에 달하며, 40%를 넘는 기업도 4곳이나 존재하는 등 자사주가 과도하게 축적·남용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나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자사주 보유 비율을 발행 주식 수의 10% 이내로 제한하는 반면, 국내는 대주주의 지배력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사용됐다는 입장이다.

 

이에 자사주 매입시 소각을 의무화하고 상장주식수에서 자사주를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해지고 있다. 지난 11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에서 이남우 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으나 지배주주에 우호적인 기업과 자사주를 맞교환해 서로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제3자에게 매각하는 방법으로 이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사주는 배당권도, 의결권도 없어 유통주식 수나 시가총액에서 빼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라며 “국내에서는 주당순이익(EPS), 주가수익비율(PER) 등 다른 지표 계산에도 자사주가 영향을 미쳐 투자 판단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을 지지해온 경제개혁연대는 상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주식회사는 이사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사회 구성을 지배주주가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그 한계는 명확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라는 법안을 빠르게 통과시키겠다는 여당의 행보에 재계는 행동주의 펀드 등으로부터 경영권 방어 수단이 흔들릴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서 지난 3일 1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8단체는 “자본시장 활성화와 공정한 시장 여건 조성이라는 법 개정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이사의 소송 방어 수단이 마련되지 못했고 3%룰 강화로 투기세력 등의 감사위원 선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입장문을 냈다.

 

대한상의가 300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주행동주의 확대에 따른 기업 영향 조사’에 따르면 상장기업 40%인 120개사가 최근 1년간 주주들로부터 주주관여를 받은 사실이었다고 응답했다. 주주관여가 발생하는 항목은 배당확대(61.7%), 자사주 매입·소각(47.5%), 임원의 선·해임(19.2%), 집중투표제 도입 등 정관변경(14.2%), 기타(10.8%) 순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는 “소액주주들의 요구사항은 주로 배당확대와 자사주 매입·소각 등 단기적 이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투자 및 연구개발(R&D) 차질 우려 등 기업들의 중장기 경쟁력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지난 11일 열린 상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이번 상법 개정으로 경영권 방어수단이 거의 소멸됐다”며 “자사주 매각, 공모증가, 제3자 신주배정 등 가능한 경영권 방어수단이 사실상 무력화됐는데, 신규 취득 자사주뿐만 기존 자사주까지 소급해 소각하게 하려는 입법 움직임이 있어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수단도 소멸 위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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