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남도의 한 작은 읍내 거리는 오후가 한창이지만 적막하다. 문 닫은 상점들이 절반을 넘고, 남아 있는 가게 역시 손님이 드물다. 버스 정류장에는 노인 몇 명이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 지역 토박이인 62세 김모 씨는 “이 동네 초등학교도 내년에 폐교한다”면서 “애들이 없다. 젊은 사람들은 다 서울로 가 버렸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나마 인근에 군 부대가 있어 군 간부 가족 관사 아파트가 있었는데 그 마저도 군 부대가 없어지게 되면서 남아있던 학교들도 하나 둘 폐교되는 실정이다.
#. 충청북도 제천시 인근 시골마을로 귀농한 지 15년차인 59세 성모 씨는 마을 청년회장을 맡고 있다. 본래 경기도 사람인 그는 내년이면 정년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청년회장 자리를 맡을 수밖에 없다. 성 씨는 “고향 친구들은 서울 등 수도권에서 살면서 내년에 정년을 맞이해 부러워하는 눈치지만 병원 등 의료시설이 너무 멀고 언제까지 농사일과 운전도 해가며 살 수 있을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다”면서 “젊은 후배들이 있어야 여기서 저도 어른 노릇도 하고 그럴텐데 다들 늙거나 병들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으로 가시는 분들이 많아 빈집만 늘어나는데 정말 외롭다”고 토로했다.
#. 서울 출신 36세 정모 씨는 서울에서의 전세살이를 포기하고 직장과 1시간 30분 거리인 시흥시로 주거지를 옮겨야 했다. 전세가 너무 가파르게 오르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정 씨는 “서울 집값이 뛰면서 전세나 월세 모두 크게 올라 더 이상 생활비가 나올 구멍이 없어질 지경이 돼 이사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그나마 1호선 역 근처에 집을 구해 지하철 타고 버스로 환승하면 직장 출근을 2시간 넘기지 않고 가능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과 수도권에는 사람이 몰려 살기에 고통스럽고 나머지 전국 방방곡곡은 사람이 사라져서 역시 힘든 상황이다.
20일 한국고용정보원의 ‘지방소멸 위험지수’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57.0%에 해당하는 130곳이 소멸 위험 단계에 있다. 특히 군 단위 지역은 젊은 층 유출로 20~39세 여성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출산 기반 자체가 붕괴했다. 그 결과 마을은 고령화로 급속히 늙고 있다. 주민 평균 연령이 65세를 넘는 지역도 등장했다. 노동력이 고갈되자 농촌은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높아지고, 의료·교육 서비스는 인구 대비 수요 부족으로 축소된다. 지역사회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힌다.
반대로 수도권은 인구가 몰리며 전혀 다른 문제를 겪는다. 서울과 수도권으로 집중된 인구는 주거난, 교통체증, 생활비 폭등이라는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도권에 살기 힘들다”는 불만이 늘어나지만, 정작 일자리와 교육 기회는 수도권에 압도적으로 몰려있다.
실제 수도권은 대한민국 전체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국가 성장 동력이 수도권에 갇히면서 지방은 스스로의 산업·경제적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는 결국 국가 전체의 성장 잠재력을 약화하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이재명 정부도 지방경제 살리기를 국가 우선과제로 보고 각종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지방시대위원회’ 설치, 지방대학 육성, 지역 인재 채용 확대, 기업 지방 이전 지원 등 굵직한 정책들이 연이어 발표됐다. 그러나 효과는 더디다.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가 워낙 구조적이고 장기간 누적된 탓이다.
전문가들은 지방소멸 문제를 단순히 인구 이동 차원이 아니라 국가 존립과 성장 잠재력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기적인 재정 지원이 아니라 지방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장기 전략이 요구된다.
특히 수도권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보다는 지방의 매력을 키워 자발적인 인구 이동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서울을 억지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지방에 가면 더 많은 기회와 생활 여건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