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조지아주 현지 우리 기업 공장에 대한 대대적인 불법체류 단속 사태의 여파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8일 재계에 따르면 이번 단속 사태로 국내 기업들은 미국 출장 및 근무 관행이 사실상 차단된 데다 민감한 통상 협상 시기에 벌어진 일이라 기업 활동 전반이 위축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대기업, 출장 중단·비자 점검
이번 단속 사태 대상 기업들은 기존 미국 출장 및 근무 관행부터 다시 살펴보는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협력사 포함 300여 명이 단속에 걸리자 임직원들에게 고객 미팅을 제외한 모든 미국 출장을 중단하도록 지시했다. 현지 출장자는 업무 상황을 고려해 귀국하거나 숙소 대기 조치를 받았다.
현대차 역시 필수적이지 않은 출장은 보류하도록 했다. 회사 측은 “주재원들은 적법한 비자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민법과 고용 확인 요건을 다시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기업들도 비자별 업무 가능 범위를 내부 검토하고 법무법인 자문을 통해 출장 관리 지침을 재정비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앞으로는 미국 출장을 원칙적인 경우에만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도 긴장…MASGA 차질 우려
대미 투자의 중심으로 떠오른 조선업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추진 중인 1500억 달러 규모 ‘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는 건은 없지만 기술 협력과 사업 조율을 위해 소규모 출장과 주재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한화오션 관계자는 “현재 파견 인력은 모두 합법 비자를 보유하고 있어 직접적으로 문제될 건 없지만 협력 분위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현지와 긴밀히 소통 중”이라고 밝혔다.
◆최태원 회장 “비자 쿼터 확보 시급”
재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날 더불어민주당과의 정책간담회에서 “국민 안전과 기업 활동을 위해 재발방지 대책과 비자 쿼터 확보 같은 구조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최 회장은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사태가 정부의 신속 대응으로 사흘 만에 석방 교섭이 타결된 점은 다행이지만 경제계의 불안은 여전하다”며 “기업이 성장할수록 규제가 늘고 보상이 줄어드는 시스템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업들이 큰 충격을 받았을텐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비자 문제 해결에 힘쓰겠다”며 “기업 성장을 보상하는 것이 혁신이라는 데 공감하며 공정 경쟁과 활력 있는 시장을 위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인력난 우려 확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날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조선, 배터리, 컴퓨터 산업에 필요한 한국 인력을 불러오겠다”고 비자 문제 등에 대해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국내 기업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국내외 비판을 의식한 발언일 뿐”이라며 “실질적 정책 변화 없이는 기업 혼란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트럼프 대통령 발언과 현장 분위기는 다르다”며 “비자 확대 같은 실질적 제도 개선이 없으면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 현지에서 주재원 생활을 했던 기업 관계자는 “이번 일을 기억하는 상황에서 미국 출장을 가라고 하면 불안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며 “앞으로 미국에서 일할 인력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