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은 산업 발전, 디지털 전환, 도시 재생, 제도 개편, 교통 인프라 확충이 한꺼번에 맞물린 분기점이었다. 20년이 흐른 2025년 현재, 그해의 결정과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주요 사안을 중심으로 짚었다.
◆국민총소득 2만 달러 시대
한국은 2005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 2만 달러를 넘어섰다. 이후 3만 달러대 안착 과정에서 물가와 환율, 노동시장 구조 변화가 체감 소득과 괴리를 낳았고, 산업 정책의 초점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과 포용으로 이동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4년 1인당 GNI 약 3만6000 달러로 당시 대비 약 1.7배 증가하며 중진국 단계에서 선진국형 소득 구조로 이행 중인 수준에 이르렀다. 다만 혁신 역량 제고와 불평등 완화의 투트랙 접근이 요구되는 국면이다.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로의 첫 삽
세종시는 2005년 첫 삽을 뜬 뒤 2010년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본격 가동됐다. 중앙행정 기능 이전으로 행정 효율화 기반이 마련된 반면, 자족 산업 기반과 교통망 확충, 생활 편익의 정교화가 과제로 지적된다. 광역 교통 연계 강화와 첨단산업 유치가 해법으로 검토되고 있다. 이와 함께 대통령실과 국회, 그리고 법원도 세종으로의 이전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현금영수증 제도
현금영수증 제도는 과세 투명성과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시행됐다. 간편결제·핀테크와 결합되며 거래 데이터의 활용성이 커졌고 소득공제·상권 분석 등 정책·산업적 응용이 확대됐다. 한편 영세가맹점 부담과 데이터 활용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은 지속 과제다.
◆주5일 근무제 시행
관공서부터 확대 시행된 주5일 근무제는 노동시간·생활양식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후 유연근무와 원격근무가 확산되며 ‘일·생활 균형’이 정책과 경영의 핵심 지표로 부상했다. 다만 업종·기업 규모에 따른 이행 격차, 생산성 지표와의 정합성 확보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올해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주 4.5일제 시행도 검토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은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가는 중이다.
◆종합부동산세
8·31 부동산대책으로 도입된 종합부동산세는 보유세 체계를 사실상 정착시켰다. 하지만 세금 중심의 규제책이 과도해 중산층과 1주택자 불만이 확산됐다. 또한 공급 확대보다는 억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수도권 신규 아파트 공급 위축이란 부작용을 낳았다. 이후 정권과 경기 국면에 따라 완화·강화가 반복됐지만 시장의 가격 형성은 점차 공급 정책과 금리 여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로 이동했다. 조세 형평성과 거래 활성화의 균형을 둘러싼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호주제 폐지
호주제 폐지는 가족관계등록부 체계로의 전환을 이끌며 성평등의 제도적 기반을 넓혔다. 여성의 법적 지위와 사회 참여 지표는 전반적으로 개선됐으나 경력 단절과 임금 격차, 돌봄의 사회적 분담 등 구조적 과제는 남아 있어 추가적인 제도 정교화가 요구된다.
◆무역 5000억 달러 시대 개막…‘수출이 성장의 엔진’
2005년은 한국 경제사에서 ‘무역대국의 원년’으로 기록된다. 10일 산업자원부 집계 기준 2005년 한국의 수출액은 2845억 달러, 수입은 2610억 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무역 규모 5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12대 무역대국 반열에 공식 진입했다. 수출의 주력은 자동차, 반도체, 철강, 조선, 휴대폰 등 5대 제조업이었다. 특히 전자·자동차 중심의 제조업 고도화가 경제성장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으며 ‘수출이 GDP의 절반을 차지한 첫 해’라는 상징적 이정표를 세웠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내수보다 수출이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구조가 본격화됐다”며 “한국 산업의 글로벌 전환이 시작된 시기”라고 평가했다.
◆자동차·조선, 세계 정상 향한 도전
자동차와 조선 산업이 ‘세계 톱클래스’로 도약한 해이기도 하다. 현대·기아차는 글로벌 생산량 연간 500만 대 체제를 눈앞에 두며 해외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했다. 특히 현대차의 NF쏘나타와 기아 스포티지가 국내외에서 흥행하며 브랜드 신뢰도를 높였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내 생산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현지화 생산 전략을 본격화한 원년이었다”고 회고했다.
조선업 역시 세계 시장에서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빅3’는 초대형 유조선(VLCC),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잇따라 수주하며 세계 1·2위를 나란히 차지했다. 한국 조선업은 “기술력으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해양산업의 중심이 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조선강국 코리아’의 위상을 굳혔다.
◆삼성·LG, 반도체·디스플레이로 글로벌 시장 석권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 전자산업의 흐름을 바꾼 해였다. 삼성전자는 DRAM 시장 점유율 30%를 돌파하며 세계 1위 자리를 공고히 했고, 반도체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력으로 경쟁사 인텔과의 격차를 좁혔다. 동시에 LCD(액정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삼성과 LG가 글로벌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한국 디스플레이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당시 세계는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와 LCD 간 주도권 경쟁이 치열했지만, 삼성과 LG는 생산 효율과 화질 경쟁력을 무기로 LCD 진영의 승리를 이끌었다.
두 회사는 그 해 나란히 세계 100대 브랜드 순위에 이름을 올리며 전자강국 코리아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경제계는 “2005년의 성취는 한국 산업이 기술 모방에서 기술 선도로 전환한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이 시기의 기술투자가 이후 20년간 반도체·디스플레이 경쟁력을 이끈 원동력이 됐다”고 분석한다.
◆청계천·서울숲 개장
서울시는 2005년 서울숲과 청계천을 개장해 도심 재생의 물꼬를 텄다. 두 사업은 초기 논란을 불식시키고 시민 휴식과 관광, 창업·문화 활동이 교차하는 도심 거점으로 안착했다. 도심 속 시민들의 휴식처일뿐더러 다양한 동식물들이 안식처로 거듭나면서 도심 속 생태계의 보고가 됐다. 다만 유지관리 비용과 주변 상권 편중, 이용 혼잡 등 후속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APEC 정상회의 부산 개최
같은 해 11월 부산에서 처음으로 열린 APEC 정상회의는 국내 마이스(MICE) 산업의 성장 촉매제로 평가됐다. 행사 이후 벡스코를 중심으로 국제행사 수주 역량이 축적됐고, 도시는 해양·관광·컨벤션을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 확장을 모색해왔다. 최근 20년 만에 경주에서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AI·에너지·기후변화·디지털 전환 등 신산업 중심 의제를 내놨다. 2005년 산업화 중심 의제에서 미래 기술·지속가능성 중심으로 완전히 방향이 바뀌게 되면서 격세지감이란 평가다.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시대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이전은 ‘수장·연구 중심’에서 ‘참여형 문화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앞당겼다. 상설·특별전의 폭이 넓어졌고, 디지털 해설·온라인 전시 등 서비스가 정착했다. 용산 일대 공원화와 연계된 문화·여가 인프라의 확장은 도심 문화축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유튜브 출범
해외에선 같은 해 유튜브가 출범했다. 국내 미디어 환경은 이후 1인 창작자 경제의 확대로 재편됐다. 광고와 음악 유통, 교육·뉴스 소비가 플랫폼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산업 전반의 기회와 규율 과제가 동시에 커졌다. 창작 생태계 보호, 허위정보 대응, 수익 배분의 공정성 등 논의가 병행된다.
2005년의 선택들은 2025년의 표준이 되거나 새로운 과제를 남겼다. 도시는 녹지와 문화로 재구성되고 제도는 투명성과 형평성을 둘러싸고 정교화되고 있다. 교통과 디지털은 생활과 산업의 기본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20년 전 시작된 변화는 완결이 아니라 진화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며 “앞으로의 과제는 지속가능성과 포용, 품질 중심의 재설계에 있다”고 말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