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상자산 시장은 정책 기대가 가격 흐름을 주도한 전형적인 ‘이벤트 드리븐(Event-driven)’ 장세였다. 연초 시장의 방향성을 결정지은 변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부터 디지털자산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 및 육성 기조를 시사했으며, 이러한 정책 기대는 위험자산 선호 심리를 자극하며 상반기 가상자산 시장 강세를 견인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지난해 6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의 상장은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는 가상자산 산업 내에서도 규제 적합성과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갖춘 비즈니스 모델이 제도권 자본시장에 편입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로, 가상자산 섹터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제고하는 동시에 향후 스테이블코인 및 결제 인프라 기업들의 자본시장 접근 가능성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7월 논의된 ‘가상자산 3법(GENIUS Act, Clarity Act, Anti-CBDC Surveillance State Act)’이 지난해 가상자산 시장의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인 GENIUS Act는 초당적 합의로 통과됐으나, Clarity Act와 Anti-CBDC Surveillance State Act는 미 하원을 통과한 이후 상원 단계에서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 기대와 현실 간의 괴리는 하반기 들어 가상자산 시장의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책 모멘텀은 일부 현실화됐으나, 전면적인 규제 명확화에는 도달하지 못하면서 투자 심리는 점차 둔화됐다. 여기에 반감기 사이클상 위축 국면 진입, 미 연방준비제도(Fed) 통화정책 불확실성과 10월 10일 190억달러 대규모 청산이 발생하면서 하반기로 갈수록 투심이 약화되며 가상자산 시장이 약세를 보였다.
올해 Clarity 법안 통과 시 가상자산 시장 전체 수혜보다는 선별적 구조 재편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으며 미국 규제 체계 내에서 운영될 수 있는 인프라와 비증권성 디지털자산이 수혜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으로 ▲미국 규제 친화적인 중앙화 거래소(CEX)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 ▲실물자산 토큰화(RWA) 및 토큰화 금융 플랫폼 ▲비증권성 디지털자산이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재단 중심 알트코인 ▲증권성 논란이 큰 토큰 ▲무등록 해외 거래소 ▲규제 회피형 플랫폼 ▲컴플라이언스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초기 단계 프로젝트들은 오히려 Clarity 법안 통과 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올해 RWA 시장이 가상자산 산업 내 핵심 성장 영역으로 부상할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채, 금, 주식 등 전통 금융자산을 온체인(On-Chain)화하려는 수요가 확대되는 가운데 Clarity 법안 통과 시 RWA 시장의 성장 속도는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미 연방 대법원 상호관세 위법 여부에 대한 판결이 올해초 단기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상호관세 위법 판결 시 단기적으로 가상자산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미국 재정 리스크 우려로 비트코인 내러티브가 다시 한번 강화될 수도 있다.
양현경 iM증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