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기금 운용을 넘어 공공신탁과 퇴직연금 등 자산관리 영역 전반으로 역할을 넓히고 있다. 치매 고령층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공공신탁 확대와 기금형 퇴직연금 참여 가능성이 동시에 거론되면서 국민연금의 공적 자산관리 역할이 점차 확대되는 모습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치매 환자가 보유한 금융자산과 부동산 등을 포괄하는 이른바 ‘치매머니’는 약 172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그러나 현재 친족 중심 후견이나 민간 고액 신탁 위주로 관리돼 제도적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올 상반기 750명 내외를 대상으로 ‘치매안심재산관리지원서비스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단계적으로 2000명 이상으로 확대해 2028년 본사업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해당 사업은 본인 또는 후견인의 의사에 따라 공공기관과 신탁계약을 체결하면, 이에 근거해 의료비 지출, 필요물품 구매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재산관리와 지출을 지원하는 제도다.
이와 연계해 국민연금은 치매머니를 공공신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민연금은 최근 재산관리지원추진단을 신설하고 변호사·회계사 등 30여명의 전문 인력을 확충했다. 그간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운영해온 공공신탁 사업을 치매 고령층까지 확대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풀이된다.
공공신탁은 상담·관리 비용이 무료이거나 저렴해 시민층 접근성이 높고 공적 기관의 운용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국민연금은 단순 보관이 아닌 자산 운용 수익을 높이고 치매 환자 복지와 안정적 노후 관리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고령층 자산 보로를 위한 공공신탁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퇴직연금 제도 개편 역시 국민연금의 역할 범위를 넓힐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태스크포스(TF)는 최근 모든 사업장에 퇴직연금 도입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수익률 제고를 위한 운용 방식으로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에 합의했다. 노사정 TF에는 고용노동부, 한국노동조합총연맹·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 등 노사정 주체가 참여했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개별 가입자가 아닌 별도의 운용 주체가 공동 기금을 조성해 자산을 운용하는 방식으로, 규모의 경제를 통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기금형 모델 ‘푸른씨앗’이 3년여간 누적 수익률 26%를 기록하면서 공공기관 중심 운용 모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국민연금공단은 퇴직연금 운용 주체로 참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국민연금의 직접 참여 여부를 두고 노사 간 이견이 존재해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스란 복지부 제1차관은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 회의에서 “초고령사회 증가추세인 치매환자 수에 대응해 경도인지장애진단자 등 선제적 예방, 돌봄 부담 완화, 환자 권리보장 등 정책 체감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라며 “치매가 있어도 환자와 가족이 안심하고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