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들이 편의성을 앞세워 독주하던 ‘모임통장’ 시장에 최근 5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들이 막강한 자본력과 생활 밀착형 특화 혜택을 들고 가세하고 있다. 이제 모임통장은 공동 투자, 지역 상생, 나아가 인공지능(AI) 관리 기능까지 탑재하며 금융권의 ‘넥스트 먹거리’로 급부상했다.
◆‘편의성’의 인뱅 vs ‘금리·혜택’의 시중은행
그간 모임통장 시장은 카카오톡이라는 강력한 소셜 네트워크 기반의 카카오뱅크와 송금의 간편함을 내세운 토스뱅크가 양분해왔다. 이제 시중은행들은 인터넷은행이 제공하기 어려운 고도의 금융 기능과 강력한 오프라인 결제 혜택을 무기로 전면적인 반격에 나섰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하나은행의 ‘하나모임통장’이다. 입출금과 금고 영역을 따로 분리했고, 정산, 총무 변경 기능 등을 탑재했다. 금고에 보관하는 자금은 최대 300만원까지 최고 연 2.5%의 금리를 적용해 금리 혜택을 강화했다. 또한 모임원들이 회비 일부를 금(金)이나 ETF에 공동 투자하는 기능을 통해 MZ세대를 정조준했다.
KB국민은행의 ‘KB모임통장’은 기존 통장을 그대로 모임통장으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췄다. 특히 모임원들이 제휴된 식당이나 카페에서 KB국민카드로 결제할 경우 결제액의 일부를 모임통장 잔액으로 돌려주는 ‘소비 연계형 캐시백’을 통해 생활 밀착형 금융 플랫폼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신한은행은 ‘SOL모임통장 서비스’를 리뉴얼했다. 홈 화면의 내역·모임 탭을 통합해 주요 기능을 한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모임비 현황, 거래 내역, 공지사항 등을 보다 직관적으로 개선해 모임주가 겪는 정산의 번거로움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AI 총무’부터 ‘지역 상생’까지…확장되는 모임금융
시장 선두주자인 카카오뱅크는 최근 ‘AI 모임총무’ 기능을 도입해 격차를 벌리고 있다. AI가 모임의 소비 패턴을 분석해 다음 회비 금액을 제안하거나 지출이 잦은 항목을 리포트로 제공한다. 특히 ‘브랜드 포켓’ 기능은 특정 프랜차이즈와의 협업을 통해 전용 할인 쿠폰을 자동 발급해주는 등 모임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케이뱅크의 ‘모임비플러스’는 목표 금액 달성 시 최고 연 10%에 육박하는 금리를 제공하며 ‘짠테크’ 모임들을 대거 유입시키고 있다.
지방은행들 역시 지역 특색을 살린 ‘로컬 밀착형’ 상품으로 반격에 나섰다. BNK부산은행의 ‘모임통장’은 지역 연고 구단인 롯데자이언츠의 성적과 연계한 우대금리를 제공하거나, 지역 축제 및 명소 이용 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탄탄한 팬덤과 지역 커뮤니티를 공략하고 있다. 광주은행 또한 지역 내 소상공인 가맹점과 연계한 회비 결제 혜택을 강화하며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고객 유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NH농협은행의 ‘NH올원모임 서비스’는 시니어 층을 배려한 ‘큰 글씨 모드’와 지역 조합원 혜택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저원가성 예금 확보와 ‘락인 효과’ 극대화
국내 은행들이 이토록 모임통장에 사활을 거는 배경을 살펴보면 첫째는 ‘저원가성 예금’의 확보다. 모임통장은 성격상 수시 입출금이 잦아 은행 입장에선 조달 비용이 극히 낮은 ‘효자 자금’이다. 둘째는 강력한 ‘락인(Lock-in) 효과’다. 모임주 한 명만 포섭해도 수십명의 모임원을 자사 앱의 활성 사용자로 만들 수 있어, 개별 고객 유치 대비 마케팅 효율이 비약적으로 높다.
금융권은 향후 모임통장의 미래가 ‘AI 에이전트’와의 결합에 있다고 보고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모임통장은 고객의 사회적 관계망 자체를 은행 플랫폼 안으로 이식하는 핵심 매개체”라며 “조만간 AI가 모임의 성격과 잔액 현황을 분석해 최적의 모임 장소를 예약하거나, 다음 달 회비 인상 필요성을 제안하는 등 지능형 금융 비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소비자들의 주의도 요구된다. 금융감독원은 “모임원 간의 투명한 내역 공유 범위나 멤버 탈퇴 시 잔액 처리 분쟁 등 운영상의 유의사항을 사전에 명확히 약정해야 한다”며 “은행별로 제공하는 우대금리 조건과 부가 서비스의 실효성을 꼼꼼히 따져보고 모임 성격에 맞는 상품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