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막히고 AI에 밀리고…청년층 덮친 ‘복합 양극화’

한국은행이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누적된 자산 격차에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산업·소득 격차까지 더해지면서 한국 경제의 가계 양극화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과거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소득 격차의 주된 원인이었다면, 최근에는 부동산 보유 여부와 세대, 산업별 기술 수혜 정도가 자산과 소득의 격차를 동시에 확대하는 ‘복합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은이 11일 발표한 ‘BoK 이슈노트: 우리 경제 가계 양극화의 실태와 파급영향’에 따르면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7년 0.584에서 지난해 0.625로 상승했다. 지니계수는 빈부격차와 계층간 소득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소득이 어느 정도 균등하게 분배되는지를 알려준다. 완전한 평등에 가까울수록 0, 불평등할수록 1에 가까워지는 지니계수가 가파르게 높아진 것이다.

 

◆부동산이 만든 자산 격차…‘열심히 벌어도 집 없는 청년’

 

자산 양극화를 키운 핵심 요인은 부동산이다. 팬데믹 기간 주택가격이 급등한 데 이어 최근에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부동산 보유 가구와 무주택 가구의 순자산 격차가 크게 확대됐다. 지역별 주택가격 차이와 주택 취득 시점의 차이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고령층과 청년층 사이의 자산 격차를 구조화했다. 

 

특히 주택과 부동산 자산이 고령층에 집중되면서 부의 이전 시점도 늦어지고 있다. 고령의 부모가 고령의 자녀에게 재산을 넘기는 이른바 ‘노노(老老) 상속’과 자산 잠김 현상이 확산되면서 청년층이 경제활동 초기에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은 더욱 부족해지고 있다.

 

고소득을 올리고도 자산을 축적하지 못하는 청년층도 늘었다. 한은은 이들을 ‘고소득이지만 아직 부자는 아닌 계층’으로 분류했다. 20~34세 청년층 가운데 고자산·고소득 가구의 비중은 감소하고, 저자산·중상위 소득 청년층이 상위 자산 분위로 이동할 확률도 낮아졌다. 근로소득을 꾸준히 모아 자산 계층으로 진입하는 전통적인 사다리가 약화된 셈이다.

 

◆AI 수혜는 고소득층에…자산·소득 격차 ‘악순환’

 

자산 격차가 누적된 상황에서 AI 전환은 새로운 소득 양극화 요인으로 떠올랐다. 처분가능소득 지니계수는 2023년 0.323에서 2024년 0.325로 반등했다. 반도체와 전자부품 등 IT 제조업은 높은 성장과 성과급을 누린 반면 건설·도소매 등 비IT 산업은 임금 상승이 제한되면서 산업 간 소득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AI가 업무를 대체할 가능성도 저소득층과 청년층에서 더 높게 인식됐다. 반대로 AI 활용률은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높아 기술혁신의 위험은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혜택은 고소득·고숙련 계층에 돌아가는 모습이다. 실제 AI 노출도가 높은 산업에서는 생성형 AI 확산 이후 청년층 고용이 감소한 반면 50대 고용은 증가하는 ‘연공편향적 기술변화’도 관측됐다.

 

문제는 소득 양극화가 다시 자산 격차를 키운다는 점이다. 고자산·고소득 계층은 높은 저축·투자 여력과 자산소득을 바탕으로 자산을 더욱 빠르게 늘리는 반면, 무주택 청년과 저소득층은 주거비와 부채 부담으로 자산 형성이 어려워진다. 순자산과 소득이 모두 1분위인 가구 가운데 20~30대 비중은 2020년 7.9%에서 지난해 15.2%로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불평등 커질수록 생산성·소비 동반 하락

 

복합 양극화는 단순한 분배 문제를 넘어 성장 잠재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한은이 120개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자산 상위 10%의 보유 비중이 1%포인트 상승하면 2년 뒤 총요소생산성은 0.16%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자산 상위 10%의 순자산 점유율은 2022년 43.0%에서 지난해 46.1%로 높아졌다.

 

소비도 위축된다. 자산이 고령층과 고자산층에 집중돼 있지만 이들은 저소득·청년층보다 자산 증가분을 소비로 연결하는 성향이 낮다. 반면 소비성향이 높은 청년과 무주택 가구는 임차료와 주택 구입을 위한 저축 부담으로 지출 여력이 줄어든다. 자산은 많지만 현금소득이 적은 고령층이 증가하는 것도 내수 회복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한은은 생계비 지원 등 소득 보전 중심의 사후적 재분배만으로는 복합 양극화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부동산에 집중된 가계자금을 주식과 혁신기업 등 생산적 부문으로 유도하고, 청년·무주택자의 자산 형성 경로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AI 대체 위험이 높은 직군에 대한 직업훈련과 전직 지원, 전 국민의 AI 활용 역량 강화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양극화는 이제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의 격차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산을 보유한 고령층에는 자본이 잠기고, 경제활동을 시작한 청년층에는 소득과 자산 형성 기회가 동시에 줄어드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이 흐름을 방치할 경우 소비 위축과 생산성 저하, 사회 이동성 약화가 맞물리면서 양극화가 저성장을 낳고 저성장이 다시 양극화를 키우는 악순환이 고착화될 수 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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