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대표 수출품인 K9 자주포가 세계 최대 방산 시장인 미국에 진출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9일 미 육군의 차세대 자주포 사업에서 글로벌 방산업체들을 제치고 시제품 공급업체로 단독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국산 무기 체계가 미국에 공급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육군은 이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국 법인인 한화디펜스USA와 ‘기동 전술포’(Mobile Tactical Cannon·MTC) 프로그램의 시제품 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차세대 자주포를 도입하기 위한 미국 육군의 자주포 현대화 사업 시제품 개발 단계에서 한화의 K9 차륜형 자주포가 단독 선정된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미 육군과 K9 차륜형 자주포 시제품 6문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미 육군은 "경쟁 입찰을 통해 체결한 이 계약을 통해 약 4년의 이행 기간에 신속한 시제품 제작, 시험 및 병사 실전 실험을 위해 육군에 최대 18문의 자주포 시스템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계약 금액은 1억30만2961 달러(약 1417억원) 규모다. 누적 액면가(cumulative face value)는 2억6290만3274 달러(약 3715억원)라고 미 육군은 전했다.
이번 계약은 6문의 MTC 시제품 시스템에 대한 신속한 납품을 규정하고 있고, 추가로 12문을 발주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양산 규모는 약 500문, 사업비는 약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화는 이번 사업에서 궤도형 자주포인 K9을 개조한 차륜형 버전 ‘K9MH’를 내세웠다. 포탄과 장약을 알아서 장전하고 발사하는 완전 자동화 포탑을 적용한 차세대 모델이다. 한화는 이 신형 자주포로 독일의 라인메탈, 영국의 BAE시스템즈, 이스라엘 엘빗, 미국 GM, 스웨덴 아쳐 등 다수의 글로벌 방산 업체와 경쟁에서 승리했다.
이번 계약 체결은 한화가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2017년 워싱턴DC에서 열린 북미 최대 규모 지상 방산전시회(AUSA)에 참여한 이래 9년 만의 결실이다.
한화는 이번 계약 체결이 김승연 회장과 김동관 수석부회장의 미국 방산 시장 진출에 대한 집념과 치밀한 전략이 만들어낸 결과로 평가했다. 김승연 회장은 그간 "방산은 국가 기간산업이며 내수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수출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방산 기술 확보를 주문해왔다.
김동관 수석부회장도 이를 이어받아 방산 사업의 미국 진출을 위한 치밀한 사업전략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애초 미 육군은 2020년대 초부터 신형 58구경장 화포를 탑재한 궤도형 자주포 개발 사업(ERCA)을 추진해 왔으나, 국제정세 악화 등으로 병력의 장거리 전개 수요가 늘면서 기동성이 높은 차륜형 자주포를 확보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김 수석부회장은 미군의 새 자주포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판단하고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지시, 2024년 3월 미 육군이 발표한 예산안에 차륜형 자주포 관련 사업이 포함된 점을 포착했다. 이후 같은 해 12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곧바로 K9MH 개발을 시작했다.
민·관 협업도 빛을 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방위사업청(방사청)은 사업 초기부터 최종 수주까지 주요 현안 등을 수시로 공유하며 긴밀히 공동 대응을 이어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현지화 강화도 이어갈 방침이다. 올해 4월 앨라배마주 오펠리카의 유휴 공장을 3년간 임차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현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지 자주포 공급망에도 투자해 미국 전투 차량 산업 기반을 강화하고 미국 육군의 장기 전력 현대화 파트너로 협력한다는 구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이번 계약은 K9 자주포가 세계 최대 방산 시장에 진입한 의미 있는 성과이자 대한민국의 무기체계가 미국을 지키는, 한미동맹의 새 역사를 썼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차별화된 현지화 전략으로 미국에서도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