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 확산에 따른 위험 요인 중 하나로 ‘지급결제시스템 분절화’를 지목했다. 다수의 스테이블코인이 서로 다른 블록체인과 결제 인프라를 기반으로 유통될 경우 기존 지급결제 체계와의 연계와 상호운용성 확보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
19일 한국은행이 김상훈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은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따른 거시경제·금융안정 리스크로 자본·외환규제 우회와 통화정책 유효성 저하, 코인런 등에 따른 금융안정 저해와 함께 ‘지급결제시스템 분절화’를 꼽았다. 해외에서는 이미 하나의 스테이블코인이 여러 블록체인에 분산돼 유통되면서 상호운용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 3월 발표한 ‘토크노믹스와 블록체인 분절화’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은 자신이 유통되는 블록체인의 구조적 분절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BIS는 탈중앙화 블록체인에서 경쟁 체인이 계속 등장하면서 통화가 갖는 네트워크 효과가 약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USDC도 이더리움과 솔라나 등 여러 블록체인에서 유통되지만 서로 다른 체인에 존재하는 USDC끼리는 기본적으로 직접 호환되지 않는다. 각각 별도의 거래장부에 기록되고 블록체인 간 거래장부가 서로 직접 통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BIS는 이와 관련해 “같은 스테이블코인이라도 한 블록체인에 있는 코인은 다른 블록체인에 있는 동일한 코인과 본질적으로 상호운용되지 않는다”며 “자산과 유동성이 분절된다”고 지적했다.
한 블록체인의 USDC를 다른 블록체인으로 이동하려면 ‘브리지’로 불리는 별도의 연결 장치가 필요하다. BIS는 이 같은 브리지가 블록체인 간 마찰을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별도의 위험을 수반한다고 봤다. 서로 다른 체인으로 활동이 이동하면서 네트워크가 조각나고, 같은 이름의 스테이블코인이라도 체인별로 유동성이 나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BIS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더 빠르고 프로그래밍 가능한 결제를 지원할 잠재력을 보여준다”고 평가하면서도 “현재 형태는 화폐의 핵심 속성에서 한계가 있고 구조적 결함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서로 다른 원장 간 상호운용성과 동일 가치 교환 가능성 등에서 제약이 있다는 설명이다.
BIS에 따르면 지난해 스테이블코인 전체 거래 규모는 약 35조달러에 달했지만, 실제 지급 목적의 흐름은 약 3900억달러 수준으로 추정됐다. 지난 4월 초 기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약 3150억달러로 아직 전통적인 지급결제시장과 비교하면 규모가 제한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이 투자 목적을 넘어 실제 결제·송금 수단으로 활용될수록 이 같은 분절화 문제의 영향도 커질 수 있다. 발행·유통 과정의 안정성뿐 아니라 서로 다른 지급수단과 기존 결제망을 어떻게 연결할지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한편 한은은 은행이 준비자산 관리와 자금세탁방지(AML) 등 규제 준수 영역을 맡고 핀테크 등 비은행은 활용사례 발굴과 유통 플랫폼 구축, 이용자 편의성 제고 등을 담당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지급수단으로 활용되는 단계에서는 발행 주체와 준비자산 규제뿐 아니라 서로 다른 블록체인과 기존 지급결제 인프라 간 상호운용성을 어떻게 확보할지도 제도 설계의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