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산이나 부채를 프로그래밍 가능한 분산원장에 기록·관리하는 ‘토큰화’가 거래비용 절감과 자동화 등 금융시장의 혁신을 이끌 잠재력을 지녔지만, 시장 확산 시 전통적 금융 취약성을 새로운 경로로 증폭시키고 기술적 취약성을 키울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8일 국제통화기금(IMF)과 공동으로 발표 행사를 개최하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IMF 글로벌금융안정보고서 ‘토큰화의 확대: 새로운 효율성과 취약성’을 공개했다.
이날 개회사에 나선 권민수 한은 부총재는 “토큰화는 중개기관별로 분절된 원장을 일체화해 자산의 발행부터 결제까지 전 생애주기를 효율화하고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토큰화 규모가 확대되고 전통 금융시스템과의 연계성이 깊어질수록 유동성과 레버리지 리스크가 충격 발생 시 더 크게 증폭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시스템 리스크가 제한적인 초기 단계이지만, 네트워크 효과를 타고 비선형적으로 급팽창할 수 있는 만큼 법적 기반 정비와 유동성 관리, 선제적 리스크 통제 장치를 서둘러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토큰화 실물자산(RWA) 시장 규모는 지난 7월 기준 약 650억달러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 중 채권과 MMF가 약 480억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주식은 약 23억달러 수준이다. 특히 담보 관리 효율성이 뛰어난 토큰화 RP 거래는 30일 이동평균 기준 거래 규모가 약 3710억달러로 시장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 토큰화 주식시장을 실증 분석한 결과, 정규 거래시간 외 거래 비중이 50%를 넘고 거래의 약 80%가 1주 미만 소수점 단위로 체결되는 등 24시간 상시 거래와 조각 투자를 통한 투자자 저변 확대 효과가 뚜렷했다. 정규장 직후 토큰화 주가 변동의 87% 이상이 전통 주식시장에 반영돼 정보 효율성도 입증됐다.
하지만 리스크 역시 적지 않다. 토큰화 시장은 유동성이 낮고 가격 변동성이 전통 시장 대비 1.5배 높게 나타났다. 또한 분산원장, 스마트계약, 외부 데이터 중계 기술인 오라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운영·거버넌스 취약성이 상존한다. 거래 즉시 자산 이전이 끝나는 원자적 결제와 자동 청산 구조는 기존 거래의 결제 시차가 제공하던 유동성 완충 효과를 없애 스트레스 상황에서 급매와 마진콜 압력을 키울 수 있으며, 담보 재사용에 따른 과도한 레버리지와 경기순응적 디레버리징 위험도 지적됐다.
한은과 IMF는 불필요한 제약을 없애는 ‘기술중립적 접근’과 함께 선제적 금융안정 장치 마련을 주문했다. 소유권을 보장하는 법제화와 '동일 활동·동일 위험·동일 규제' 원칙 적용, 플랫폼 간 상호운영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특히 증권 결제망에는 시스템적 안전성을 고려해 중앙은행 화폐 기반 결제수단을 활용하고, 24시간 거래 환경에 맞춘 서킷브레이커 도입 및 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