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관료 낙하산으로 불리는 이들은 권력 연장의 정수를 보여준다. 60세 정년이라지만 이들에겐 무소불위다. 통계청 평균수명 82.7세의 장수시대가 열리면서 생명력도 더욱 길어졌다. 중앙부처 관복을 벗은 지 한참 이후에도 새로운 자리를 찾아 권력을 이어간다. 전문성을 지닌 인재들은 이들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고 시들어간다.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역임한 경제 관료 출신인 1946년생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지난달 27일 제32대 무역협회 회장 취임식을 갖고 임기를 시작했다. 임기는 3년이며 연임 가능하다. 산업부 출신 관료의 무역협회 인사를 두고 ‘관료주의 부활’이라고 칭할 수 있겠다.
이력을 보면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윤 신임 회장은 노무현 정부 산업자원부 장관,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 정책실장을 비롯해 18·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력이 있다. 이어 10년 만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원회 특별고문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10년의 공백은 크다. 무역협회의 수장은 한국의 무역의 관장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인데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무역시장의 흐름을 간파하고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특히 정부입김 없이 수출기업의 입장을 온전히 대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역협회는 국내 경제 5단체 중 하나다. 1991년부터 15년간 기업인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이후 15년은 관료 출신이 회장을 맡는 등 관가의 입김이 센 곳으로 여겨졌다. 2021년부터는 LS그룹 구자열 의장이 무역협회 회장 자리에 올랐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2006년 퇴임) 이후 15년 만의 민간 출신 무협회장이어서 반가웠다. 하지만 구 회장이 연임을 하지않자 관료 출신 윤 회장이 취임했고 또 관치협회가 됐다.
이러한 인사 결과에 무역협회가 산업자원부 산하기관이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최근 한일경제인협회 차기 회장에 내정된 데 이어 한국·아랍소사이어티 이사회 이사장을 연임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준 구자열 의장이 연임하지 않는다는 점이 의아하다”며 “윤 회장 역시 훌륭한 분이지만 관료 출신이라 과거로 회귀하는 분위기를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예는 찾아보면 적지 않다. 퇴직 관료들의 생명 연장은 상당히 광범위하고 깊숙하다. 한 예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자리는 관료 출신 인사의 취임이 관행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지난해 3월 노연홍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자리에 앉았는데, 앞서 원희목 전 사회보장정보원장에 이은 관료 출신 회장 선임이다. 해당 협회는 보건복지부 산하 단체로서 289개 제약기업을 회원사로 거느리고 있다.
물론 관료 출신이라고 문제가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기회의 분배 차원에서 볼 때 불공평한 게 분명하다. 최근 시가총액 기준 30대 기업의 사외이사 후보 가운데 약 46%가 관료 출신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선진국들이 현장 경영자 위주로 사외이사를 뽑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다. ‘관피아 방지법’ 및 ‘공직자윤리법’ 등의 관련 법안을 시급히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