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사태로 사모펀드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홈플러스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의 이유로 대형마트 규제, 쿠팡의 성장 등을 거론했지만 MBK파트너스의 무리한 인수와 방만한 경영이 패착이 됐다는 데 시장의 이견은 없다.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자 김병주 MBK 회장은 홈플러스의 빠른 정상화를 위해 사재를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규모와 실행 계획은 내놓지 않아 말로만 끝날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홈플러스 사태 정상화를 위해 관건은 사재 출연 규모가 될 전망이다.
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는 지난 16일 입장문을 내고 “홈플러스 회생절차와 관련된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며 “그 일환으로 김병주 회장은 특히 어려움이 예상되는 소상공인 거래처에 신속히 결제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마련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소상공인 거래처라는 대상만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금액이나 실행 계획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다. MBK는 소상공인 거래처에 지급해야 할 결제대금 현황을 파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홈플러스는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지난 7일 3457억원, 11일 1127억원 총 4584억원 규모의 상거래 채권 변제를 승인받고 소상공인 우선으로 지급하고 있다. 홈플러스가 이날까지 지급 완료한 금액은 3510억원이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의 실제 사재 출연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은 기대감과 의구심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소상공인들은 구두 발표가 아닌 공문 형식으로 정확히 입장을 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전향적으로 사재 출연을 밝힌 것은 환영하나 정확한 공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 달라”고 언급했다. 강경모 홈플러스 입점협회 부회장 역시 “공문이 아닌 구두는 어디까지나 약속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홈플러스 노조)도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회장의 사재 출연 발표는 정치적 압박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라고 비판했다. 국회의 출석 요구, 국세청 세무조사, 노조 반발 등 사회적 압박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내놓은 조치라는 지적이다.
김 회장은 오는 18일 열리는 국회 정무위원회 홈플러스 관련 현안 질의의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 비판을 받고 있다. 질의에는 김광일 MBK 파트너스 부회장 겸 홈플러스 공동 대표, 조주연 홈플러스 공동 대표가 출석할 예정이다.
노조는 김 회장을 향해 “피해를 본 국민과 노동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와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임시방편적 사재 출연이 아닌 추가적인 사재 출연을 통해 홈플러스의 회생절차를 중단하고 기업을 정상화하라”고 촉구했다.
업계는 홈플러스의 영업이 중단되지 않으려면 최소 1조원 넘는 자금 수혈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홈플러스는 매달 협력사 납품 대금과 입주업체(테넌트) 정산, 임직원 월급, 수도∙전기세 등 기타 비용으로 500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또 납품∙입점 업체의 신뢰 회복을 위해선 정산주기 단축이나 선입금, 담보제공 등이 필요할 수 있다.
김 회장의 사재 출연은 채권단과의 회생계획안 협상의 물꼬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홈플러스∙MBK가 6월 3일까지 법원에 회생계획안을 제출하려면 채권단의 협조가 필수인데, 기습적인 회생 신청 후 별다른 자구 노력을 보이지 않아 양측의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홈플러스 사태가 MBK의 사업 프로젝트에 여러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조기 진화를 위해 이런 약속을 한 것 같다. 더 빠른 조치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뒤늦게라도 수습하는 것은 다행”이라며 “시장의 이목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행돼야 하며 채권단과 시장이 납득할 만한 액수가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과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이번 홈플러스 사태로 사모펀드 자체에 대한 불신이 증폭돼 김병주 회장도 각성했을 수 있다”며 “홈플러스 사태가 어떻게 수습되느냐에 따라 향후 MBK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모펀드들이 앞으로 하는 사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