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의 특성상 가업을 영위하는 고령의 경영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국내 유수의 회계법인과 대형 은행에서의 커리어를 뒤로하고 개업시장에 뛰어들어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멋진 패션 센스를 자랑하는 70대의 경영자분과 상담을 진행했다. 그 자리에는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실질적으로 경영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40대 후반의 자녀도 함께였다.
가업승계와 관련된 세법내용을 설명하고 그간 잘못 알고 계셨던 부분을 바로잡는 시간을 가졌다. 해당 내용이 마음에 드셨는지 그들은 살아온 이야기들을 정답게 들려줬고 때로는 부자지간에 쌓인 오해들도 서로 나누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필자의 머리를 강하게 치는 노 기업가의 말씀이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야기의 발단은 이러했다. 가업승계를 앞둔 많은 중소기업들이 그러하듯 부자지간의 반목과 인내의 사건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급기야 자녀분은 본인도 좋은 시절을 모두 해당 기업에 바쳤다는 취지의 서운함을 내비쳤다. 특히나 사회 초년생 시절을 같이 보냈던 전직장의 동료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여행지나 여유로운 시간들을 보내는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을 보며 ‘내가 휴가도 못가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나’ 라는 생각들에 허탈감이 밀려온다고 했다.
대부분 이러한 반응에 보통의 회장님들은 “지금은 고생스럽지만 나이 들고나면 좋아진다”라거나 자녀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의 토대가 모두 부모에게 나왔음을 에둘러 표현하곤 한다. 그런데 이분은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아주 간명하게 표현해줬다.
“인간은 본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때 일반적인 차원과는 다른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 인간인 기업가의 능력을 펼칠 기회는 무엇인가? 나는 자신의 능력으로 타인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 그것이 가장 큰 기회라 본다. 월급을 받아 가족을 건사하는 일이나, 국가를 책임지는 자가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 그리고 기업가가 하는 행위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직원과 거래처에 제때 급여와 외상대금을 지불할 수 있을 만큼의 수익을 길게 지속할 수 있는 것이 기업가로서 능력의 본질이고 이것을 해결하고 있는 것이 기업가로서 가장 큰 보람이고 행복이다. 기업가로서 10년 넘게 이를 유지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최근에 만난 대부분의 기업 대표님들은 현실의 어려움과 이러한 어려움을 나눌 수 없는 고독감을 토로한다. 나 또한 견고한 울타리를 벗어나 회계, 세법 뿐 아니라 고객과 직원과의 관계 그리고 향후 나아갈 바에 대해 고민하며 현장의 고단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동안은 그것이 매각이든 ‘파이어(FIRE)’든 모든 세상이 그저 빠르게 성장하고 현실세계를 탈출하는 것을 최선이라 치부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 세상속에서 업의 본질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원칙 지키려 노력하고 이를 어기는 부분이 발생하면 괴로워하며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모든 것이 힘겹기만 하고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오랫동안 업을 유지하는 것을 본질로 삼은 고령의 기업가가 아들에게 전한 통찰은 나에게도 크고 소중한 격려였다.
이러한 격려가 필요한 것이 비단 기업가 뿐일까. 오랜 기간 업을 영위해 온 분이 말하듯 자신의 능력으로 본인을 건사하고 타인도 건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당신은 이미 본질을 잘 지켜내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 스스로 충분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그러한 늦봄이 되길 빈다.
최정욱 회계법인 브릿지 공인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