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표 배드뱅크의 명암] 113만명 빚 탕감 속도…재기 기회 vs 도덕적 해이 설왕설래

- 총 8000억 중 절반은 금융권 지원
- 李 성남시장 시절 주빌리銀과 유사

5000만원 이하 7년 이상 된 16.4조 규모 채무소각…역대 정부, 한 번씩 빚 탕감

 

지난 12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업주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정부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코로나 대출을 탕감 및 조정하기 위한 ‘배드뱅크(bad bank)’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장기간 빚의 늪에 빠진 사회적 약자에 재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배드뱅크란 자영업자 등의 부실 자산을 인수 및 정리하는 특수기관으로 손실은 정부 재정으로 보전하는 구조다. 일부는 재기를 통한 경제효과가 크다며 반기고 있지만, 재원 조달과 도덕적 해이 논란이 뒤따른다.

 

지난 19일 의결된 제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담긴 이재명표 배드뱅크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금융사로부터 장기 연체채권을 일괄 매입한 뒤 빚을 탕감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는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이다. 지원 대상은 5000만원 이하 빚을 7년 이상 연체한 금융 취약계층과 개인 자영업자다. 채무 조정기구가 소득·재산심사 등을 통해 중위소득 60% 이하면서 처분 가능한 재산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빚을 100% 탕감해준다. 상환능력이 부족한 차주에 대해선 최대 80%의 원금 감면, 10년간 분할 상환이 가능하도록 채무 조정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총 113만4000명이 떠안고 있는 연체채권 약 16조4000억원이 사라질 것으로 추산됐다. 정부는 이를 위한 예산을 약 8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7년 이상·5000만원 이하 연체채권 규모에 5%의 평균 매입가율을 적용한 것이다. 정부는 이 가운데 절반은 2차 추경으로, 나머지 절반은 은행 등 금융권 지원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을 통한 지원도 강화한다. 총 채무 1억원 이하, 저소득(중위소득 60% 이하) 연체 차주의 채무 원금의 90%를 감면하고, 최대 20년 분할상환을 지원키로 했다. 현재는 상환 능력에 따라 원금 60~80%를 감면하고 있으며, 최대 분할 상환 기간은 10년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배드뱅크는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시행했던 주빌리은행의 사례가 활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이던 2015년 주빌리은행을 출범시키고 공동은행장을 맡았다. 주빌리은행은 채무자의 부채 탕감을 위해 금융회사의 장기 연체 채권을 원금의 3~5% 가격에 사들여 소각했다. 당초 채무자가 원금의 7%만 갚으면 빚을 탕감해 줄 계획이었지만 또다른 채권 추심이 될 수 있다는 논란에 조건없는 소각으로 전환됐다. 다만 비영리 민간단체가 직접 채권매입을 할 수 없어 주빌리대부를 설립해 채권을 사들였다. 현재 정부는 비영리법인도 채권 매입을 할 수 있도록 규정 변경을 예고한 상황이다. 

 역대 정부의 배드뱅크를 살펴보면,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신용카드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2004년과 2005년 각각 한마음금융·희망모아를 내놨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720만 신용 대사면’을 약속했다. 저신용자의 채무 중 이자를 감면해주고, 신용불량자 연체 기록을 말소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빚을 최대 50%(기초수급자는 최대 70%)까지 줄여줬다. 문재인 정부는 장기 소액 연체자의 채무를 100% 탕감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지원 대상은 1000만원 이하의 빚을 10년 이상 연체 중인 개인 차주로, 대상자가 159만명(채무 6조2000억원)가량일 것으로 추산했다. 윤석열 정부도 ‘새출발기금’을 조성해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의 채무를 감면해줬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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