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통업계의 ‘초저가 경쟁’은 올해 들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가격에 상품을 맞추는 초저가 제품 기획이 각광받고 있다. 업체들은 파격적인 가격의 상품을 내놓으며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윤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서라도 판매량을 늘리거나 신규 소비자를 유치하려는 맞춤형 전략이다.
2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소비자 체감 물가를 실질적으로 낮춘 초저가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소비자들과 접점이 많은 유통 채널에서 두드러진다. 고가 상품보다 저가 상품을 적극 활용해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마트는 최근 5980원 초저가 위스키 ‘저스트 포 하이 볼’을 선보였다. 하이볼용으로 출시된 제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현재 시판 중인 위스키 원액 중에서는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한다. 위스키로 만들 수 있는 하이볼은 355㎖ 잔 기준으로 8잔 안팎이다. 한잔당 800원이 채 안 되는 수준이다. 이마트는 직접 운영하는 자체 브랜드(PB)인 노브랜드를 통해 햄버거부터 식자재, 각종 생활용품 등에서 이러한 초저가 제품 기획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다. 노브랜드는 최근 탄생 10주년을 맞아 2만9980원짜리 운동화를 출시하기도 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운동화는 노브랜드가 처음 내놓은 품목이기도 했다.
롯데마트도 지난 4월 1000원짜리 PB 두부와 콩나물(이상 300g)을 출시한 바 있다. 일반 상품 대비 50% 이상 저렴하게 판매해 해당 상품군에서 판매량 상위 5위 안에 들 정도로 인기가 있다. 또 롯데마트는 26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15년 전 업계에 화제를 모았던 통큰치킨을 한마리에 5000원 특가로 판매한다. 해당 가격은 2010년 통큰 치킨을 선보였을 당시 가격과 동일한 가격이다. 이외에도 1등급 한우·수박·활 랍스터를 기존 대비 50% 할인 판매하는 통큰세일을 진행한다.

이랜드킴스클럽은 25일부터 계란 1판(30구)을 6990원에 전국 6000판 한정 판매하기로 했다. 2주 단위로 대란 30구 상품의 유통가를 점검하며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합리적인 가격을 지속해서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편의점에서도 균일가 상품이 꾸준히 출시되고 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이달 1~22일 판매된 라면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8%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중에서도 CU의 초저가 자체브랜드(PB) 상품인 ‘득템라면’은 판매량이 37.5%나 증가했다. 득템라면은 봉지당 가격이 1000원 안팎인 기존 상품들보다 50%가량 저렴하다. 같은 기간 득템 닭가슴살 매출은 77.6%, 득템 계란 15구 매출도 31.5% 각각 증가했다. 지난해 9월 출시한 990원 초코우유와 딸기우유의 누적판매량은 450만개에 달한다.
또 CU는 880원 육개장, 990원 삼각김밥·과자·채소·가공유 등 1000원 미만의 초저가 상품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2900원짜리 캡슐커피(10개입)도 내놨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는 올해 가성비 뷰티 제품 라인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GS25는 싸이닉 수분 톤업 선크림, 싸이닉 히알스피큘 150샷, 이츠비 레이샷 100, 이즈앤트리 어니언 프레쉬 겔크림 등 3000원대 가성비 뷰티 상품을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그렇다면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초저가 상품은 어떻게 탄생하는 걸까. 비결은 판매 가격을 먼저 설정하고, 지속 가능한 원가 구조를 역으로 만드는 ‘가격 역설계’ 전략이다. 가격 역설계는 상품을 기획할 때 판매가를 먼저 정하는 것이다. 원가와 이윤은 정해진 판매가에 맞춰 조정한다. 원가와 이윤에 따라 판매가를 정하는 통상적인 가격 책정 방식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업체들이 가격 역설계 전략을 택한 이유는 고물가 기조로 저렴한 가격이 구매를 결정하는 최우선 요소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물가 시대 소비자들은 가성비가 좋은 실속형 상품을 선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업체들은 이윤이 줄더라도 ‘박리다매’식으로 판매량을 늘림으로써 소비자를 유치하려는 불황형 대응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물가와 불경기 장기화로 소비 침체가 심해지자 업체들이 고육지책으로 너도나도 가격 역설계 전략을 통해 초저가 상품을 내놓고 있다”며 “업체들은 마케팅 비용 축소와 자체 이윤까지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가격 거품을 빼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기 전까진 소비자들이 대체로 실속형 소비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초저가 상품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