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장기연체채권을 일괄 매입해 소각하는 장기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배드뱅크)의 소요 재원 절반을 전 금융권이 부담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2차 추가경정예산안 확정으로 배드뱅크 설립 등 장기 연체채권 소각 준비에 속도가 붙었지만 여전히 성실 상환자와의 역차별 문제 등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7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배드뱅크 소요 재원 8000억원 가운데 4000억원을 은행권을 포함해 금융투자, 보험, 여신전문금융회사, 저축은행, 상호금융등 전 금융권을 통해 조달할 방침이다.
원래 은행권이 배드뱅크 설립을 지원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소각대상 채권의 상당 규모가 2금융권이 보유하면서 전 금융권이 참여하는 것으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을 중심으로 전 금융권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2~3금융권의 부실 여신을 은행 출연금으로 소각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다면서 2금융권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부실채권 규모에 비례해 금융권 분담 비율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화 등으로 2금융권의 경영 상황이 좋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9월까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채무조정기구를 설립하고 연내 장기 연체채권 매입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은 구체적인 배분 방식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프로그램 협약 대상과 관련해서도 은행, 여신전문금융회사, 상호금융,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모든 금융권이 참여하도록 독려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이번 프로그램으로 113만4000명의 장기 연체채권 16조4000억원이 소각 또는 채무조정될 것으로 예측했다.

나아가 금융당국은 장기연체채권 채무 조정에 대해 도덕적 해이와 성실 상환자 형평성 논란이 이어지는 것과 관련해 소득·재산 심사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금융투자(주식·코인 등)로 인한 채무, 유흥업 등 사행성 업종과 관련된 채권은 매입 대상에서 제외한다. 외국인도 정당성과 필요성이 인정되는 범위에서만 제한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유흥업, 도박으로 인한 채무 등을 사실상 선별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소액 신용대출의 경우 금융기관으로부터 제출받는 정보로는 대출 목적을 판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차주가 자발적으로 밝히지 않는 한 실제 대출 목적을 파악하기 어렵다. 또 은행·여신업권에서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했을 경우엔 채무 성격을 판단하기도 어렵다.
당국은 신속한 채무조정 대상자 선별을 위해 배드뱅크가 차주 동의 없이도 금융기관으로부터 소득·재산심사 관련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게 신용정보법 개정에 나섰다. 올해 3분기까지 프로그램 세부 내용을 확정할 계획이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