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서초동 별곡, 재건축의 끝없는 소송의 늪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재건축 시장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규제 완화와 각종 인허가 관련 소식에 서울 강남, 특히 서초동 일대는 말 그대로 ‘불장’ 분위기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재건축 함정’의 중심에는 법의 빈틈을 파고드는 소송 리스크가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재건축 사업의 가장 큰 비극은 사업 추진 시기와 실제 입주 시기의 괴리가 존재하며 조합원들은 몇 년 안에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기대를 품지만,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조합원들의 입주 시기를 지연시키는 가장 큰 적은 다름 아닌 법원의 가처분 제도다. 가처분은 본안 소송 전에 법원이 잠정적으로 내리는 명령으로, 사업 진행 중 심각한 권리 침해를 막자는 목적이지만 현실에서 가처분은 종종 재건축 사업의 발목을 잡는 무기로 변질된다.

 

특히 재건축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등 일부 세력은 가처분을 통해 집행부를 흔들고, 사업을 지연시키는 수단으로 이를 악용한다. 비대위 혹은 조합이 당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가처분 재판에는 기한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3개월 만에 결론이 나는가 하면, 1년 넘게 끌려다닐 때도 흔하며, 본안 소송은 시간표라도 존재하지만 가처분은 ‘법원의 재량’이라는 벽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여기에 가처분 특유의 예측 불가능성이 덧붙여지면서 조합은 조금이라도 승소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거액을 들여 로펌을 선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가처분제도의 피해는 조합원의 몫이다. 조합원 수가 1000명 규모라면, 법무 비용만도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400~800억원대에 이르고 명도 비용, 각종 등기 비용까지 합산하면 그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 모든 비용은 조합원의 분담금 혹은 추후 일반 분양가에 전가된다.

 

최근 로펌들은 아예 재건축·도정법 전문팀을 따로 만들어, 조합을 상대로 치열한 영업에 나서고 있다. 동일한 사안이라도 로펌의 역량과 법리 해석에 따라 비대위가 승소하거나 조합이 승소하기 때문이다. 

 

조합원 누구나 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는 데다 단 한 명의 이탈도 수백억 원의 피해를 부를 수 있는 가처분 제도와 사법부의 판단이 일관되지 못한 틈을 비집고 법조 시장 배만 불려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변호사 시장의 경쟁이 가열되면서, 분쟁은 더 복잡해지고 비용은 더욱 치솟고 있어 재건축은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가처분 재판의 기간과 절차를 표준화해 소송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둘째, 무엇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의 개정이 시급하다.

 

현재의 법은 구멍이 너무 많고, 갈등을 막기는커녕 분쟁을 키우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규제 완화로 재건축 활성화를 외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허술한 법 체계와 소송 산업화라는 커다란 폭탄이 여전히 뇌관으로 남아 있다는 점을 분명히 주지해야 한다. 

 

정해권 재건축 탐사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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