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보이스피싱 범죄자에 속아 돈을 보내더라도 금융회사가 피해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무과실 배상 책임’ 법제화를 추진한다. 또한 피해 발생 전 금융사가 효과적으로 범죄 의심계좌 등을 탐지하고 계좌를 지급정지 할 수 있는 장치로 보이스피싱 인공지능(AI) 플랫폼을 구축하고, 경찰청부터 금융보안원까지 관계기간이 협력하는 범정부통합대응단도 출범한다.
정부는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윤창렬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범정부 보이스피싱 대응 TF’를 개최해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보이스피싱 예방에 책임이 있는 금융사가 보이스피싱 피해액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배상하도록 하는 '보이스피싱 무과실 배상책임'을 법제화하기로 했다.
그간 금융사들은 ‘비대면 금융사고 책임분담기준’으로 보이스피싱 피해를 자율적으로 배상해왔다. 그러나 비밀번호 위·변조에 따른 제3자 송금·이체의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배상이 이루어져 실질적인 피해구제나 범죄 방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보이스피싱 무과실 배상책임이 법제화 되면 피해자가 보이스피싱 범죄자에 속아 직접 자금을 이체한 경우라도 일정 범위 내에서 금융사가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
이에 따라 금융사들은 보이스피싱을 선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FDS를 고도화하고 전담인력을 대폭 확충하는 등 대응방안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무과실 배상책임 제도의 배상 요건, 한도, 절차 등 구체적인 내용을 금융권과 긴밀히 논의해 나가고 있다”며 “허위신고나 도덕적 해이 등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사당국과 피해사실 확인을 위한 정보공유 방안 등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사의 보이스피싱 대응을 위한 인적·물적 역량도 확충한다. 보이스피싱 예방·대응을 위한 전담부서와 전문인력 배치를 의무화하는 한편, 금감원이 보이스피싱 피해가 집중되는 금융사의 보이스피싱 대응 역량을 평가하고 개선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하기 금융사가 효과적으로 범죄 의심계좌 등을 탐지하고 계좌를 지급정지 할 수 있도록 보이스피싱 AI 플랫폼도 구축한다. 이를 통해 ▲보이스피싱 의심계좌 사전 지급정지 ▲피해자 의심거래 차단 및 문진·안내 ▲보이스피싱 의심 통신회선 사전 경고 ▲범죄 취약층 예방정책 수립·경고·안내 등에 활용한다. 이로써 사전탐지 역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제2금융권도 신종 범죄수법 데이터와 금융보안원의 AI 기술을 바탕으로 범죄계좌를 효과적으로 지급 정지할 수 있게 된다.
보이스피싱 AI 플랫폼을 통해 금융사·통신사·수사기관 간 업무협조·정보교류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통신 단계에서는 보이스피싱을 차단할 수 있고, 수사 전략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플랫폼은 실무협의·전산구축·규정 개정 등의 절차를 거쳐 이르면 오는 10월 중 출범한다.
또한 금융당국은 가상자산거래소가 보이스피싱 이상거래탐지, 거래목적 확인, 지급정지, 피해금 환급 등을 할 수 있도록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 입법을 추진하고, 여신거래 및 비대면계좌개설 안심차단서비스에 이어 오픈뱅킹을 악용한 보이스피싱 피해자금 이체를 방지하기 위한 ‘오픈뱅킹 안심차단 서비스’도 구축할 방침이다. 보이스피싱 범죄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최신 범죄수법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 부처가 협업해 홍보도 강화한다.
오는 9월부터는 경찰청 중심으로 관계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보이스피싱 통합대응단’이 가동된다. 기존 상담 위주였던 센터 인력을 43명에서 137명으로 대폭 확대하고, 연중무휴 24시간 체계로 전환한다. 수집된 범죄정보는 전담수사조직에 즉시 공유돼 전국 단위 병합수사가 가능해진다.
조직은 치안감급 단장을 중심으로 정책협력팀·신고대응센터·분석수사팀으로 구성하고, 금융위·과학기술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방송심의위원회·한국인터넷진흥원(KISA)·금융감독원·금융보안원 등 유관기관 파견 인력도 대폭 보강한다.
또한 악성앱 차단을 위해 문자사업자의 엑스레이 탐지, 이통사의 URL·발신번호 차단, 단말기 자동설치 방지까지 3중 보호체계를 구축한다. 대포폰·번호변작(SIM Box)도 제조·유통·사용 금지로 봉쇄하고 외국인 여권 개통은 1회선으로 제한하고 이통사는 불법개통 관리의무가 대폭 강화돼 위반 시 등록취소·영업정지 등 강력 제재를 받는다.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이번 대책을 통해 보이스피싱을 반드시 근절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 여러분의 주의와 협조라며, 의심되는 전화와 문자는 절대 응대하지 말고 곧바로 신고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