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물은 이미 선진국 수준입니다. 다만 몇 년 전까지도 그걸 객관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려웠죠.”
한국물기술인증원(이하 인증원)은 물과 관련된 기술 및 기자재와 제품을 인·검증하는 정부 위탁기관이다. 구체적으로는 수도꼭지·상수도관·밸브·펌프 같은 기자재, 정수기, 먹는 샘물(생수) 등에 대한 위생안전·품질·성능의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충족한 제품 혹은 기술에 인증 및 검증을 부여한다. 기존에는 한국상하수도협회가 이 역할을 맡았지만 해당 협회는 물 기업들의 연합이라는 점에서 객관성 확보가 어려웠다. 2019년 11월26일 인증원이 대구 달성군의 국가물산업클러스터에 개원하면서 비로소 독립기구의 전문적인 물 인증이 가능해졌다. 최근 인증원 서울회의실에서 만난 김영훈 인증원 원장은 “간단하게 표현하면 물기업이 만든 안전한 제품을 국민이 안심하고 마시거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관”이라고 소개했다.
◆개천서 물장구치던 소년… 30년 ‘물에 빠진’ 전문가로
전북 익산 출신의 김 원장은 어린 시절 집 근처 개천에서 소금쟁이를 잡으며 물놀이를 하는 소년이었다. 중학 시절에는 장마철 집중호우로 교실이 물에 잠겨 수업이 취소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40~50년 전을 떠올린 그는 “되돌아보면 어린 시절 몸을 담근 개천은 물이 꽤 더러웠을 거다. 아직 한국에 하수도 시설이 본격적으로 설치되기 전이라 생활오수가 정화되지 않은 채 하천으로 바로 흘러드는 시대였다. 빗물에 잠겨 걸상이 둥둥 떠다니는 일이 잦았던 교실은 결국 배수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며 “그 뒤 한국의 하수처리 수준, 강우 배수 등 치수(治水) 관리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기에 웃으며 추억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91년 행정고시 35회로 공직에 입문한 김 원장은 1998년 환경부 수질정책사무관으로서 ‘한강 상수원 수질관리 종합대책’ 수립에 참여하면서 물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1990년대 초반 이후 팔당 상수원의 오염 문제 등으로 위기의식이 점차 커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물 관리에 있어서는 개별 하수처리장 및 폐수처리장 설치와 오염원 단속 등 사후 관리에 머무는 시기였다. 이에 근본 대책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한강 수계에 대한 관리종합대책을 세운 것이다.
김 원장이 힘을 보탠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서 1999년 낙동강, 2000년 금강과 영산강까지 4대강 수질관리 정책도 담당했다. 특히 낙동강의 경우 상·하류 지역이 상생할 수 있는 공영체계를 마련하고, 물이용부담금 제도를 도입해 실질적 지원책을 제시했다. 이후 이를 뒷받침한 4대강 수계법도 만들어졌다.
그 뒤로도 물환경정책과장, 한강유역환경청장, 물환경정책국장, 물통합정책국장 등을 역임하다 2023년 제2대 물기술인증원장으로 부임한 그는 “30년 가까이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셈”이라며 웃었다.
◆인증원 지원 아래 ‘노는 물’ 달라진 K-워터

인증원은 국내 유일의 물 인·검증 전문기관으로서 국민이 매일 사용하는 수도꼭지의 물부터 생활 속 다양한 물 관련 제품과 기술이 안전한가에 대한 질문에 과학적 근거와 적확한 기준으로 답해왔다. 그리고 위생안전인증부터 수처리제, 하수도 분야, 나아가 기후변화 시대에 필요한 물순환 제품과 먹는샘물까지 인증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아울러 물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앞서 고민하며 선도기업들이 미래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우선 혁신 기술을 보유하고도 검증의 벽을 넘지 못한 기업을 대상으로 실증화 지원을 강화해 현장 적용 가능성을 높였다. 또한 법정의무 인증인 위생안전기준(KC) 인증의 규제 합리화를 통해 기업의 부담을 줄였다.
김 원장은 “현장과의 소통을 통해 KS(한국산업표준), ISO(국제표준화기구)와 같은 타 인증을 보유한 경우 해당 인증제도와 중복되는 심사항목을 생략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며 “업무 자동화 프로그램(RPA)을 도입하고 업무편람을 마련함으로써 체계적 업무 처리를 통해 인증 처리기한을 전년 대비 12%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국내를 선도하는 우수 물기업의 해외시장 진출도 돕는다. 미국위생재단(NSF) 인증 지원이 대표적이다. NFS 인증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라 기업 해외 경쟁력의 바로미터가 된다. 하지만 복잡한 절차와 현지 대응의 어려움으로 다수의 국내 중소기업이 인증 취득에 난항을 겪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인증원은 NSF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인증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기업에 신속히 전달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했다.
김 원장은 “사전교육부터 유지·갱신까지 NFS 인증의 전 과정을 밀착 지원해 평균 1년 이상 소요되던 인증 기간을 약 8개월로 단축시켰다. 지난해 기준 10개 기업이 NFS 인증을 취득했고 약 870만 달러(약 121억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미 미국서도 인정받는 회사가 나오고 있다”며 “물기업 입장에서 상수도보급율이 98%에 이르는 국내 시장은 포화 상태다. 해외 시장 진출이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올해 16개 기업의 NFS 인증을 지원 중인 인증원은 유럽통합규격인증(CE), 영국수도기자재인증(WRAS), 일본전기용품안전인증(PSE) 등 국가별 인증 취득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관련기관과 네트워크도 넓혀가고 있다. 또한 아시아 주요국에 보다 용이한 수출이 가능하도록 ‘K-NSF 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수원지 좋은 한국… ‘K-에비앙’도 가능해”
한국은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의 환경성과지수(EPI) ‘위생과 먹는 물’ 부문에서 90.1점을 받아 180개 조사 국가 중 27위에 올랐다. 또한 올해 ‘수돗물 수질’ 부문에서는 91.1점으로 21위를 기록했다. 김 원장은 “우선 한국은 수원이 좋은 나라에 속한다. 영국,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는 석회 성분이 포함된 수원지가 많다”며 “수돗물 및 생수 관리도 선진국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수돗물은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이 166개 항목보다 두 배 이상 많은 350개 이상 항목을 검사한다. 생수도 1995년 ‘먹는물관리법’ 제정 이후 관리 수준이 올라가면서 WHO 기준은 물론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의 기준도 충족한다. 아울러 향후 정부에서 글로벌 수준의 먹는샘물 관리를 위해 품질·안전인증제를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원장은 “에비앙이나 피지워터 같은 글로벌 프리미엄 생수는 물 자체 뿐 아니라 스토리텔링과 패키징을 통해 가치 있는 상품이 됐다”며 “우리나라도 청정 자연을 기반으로 프리미엄 생수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미세플라스틱이나 유해물질 대응을 위한 조사·연구를 강화하고 기업은 차별화된 패키징과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제도적 신뢰성과 연구개발, 브랜드 전략이 맞물릴 때 비로소 한국형 프리미엄 생수가 세계 시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물은 공짜가 아니다… ‘물순환 체계’ 기반 마련할 것”

오늘날 도시화, 산업화, 기후변화의 가속화로 인한 집중호우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자연의 물 순환이 무너져가고 있다. 아스팔트 도로 포장 등으로 빗물은 땅으로 스며들지 못한 채 표면 유출되고, 개발 등으로 지하수는 줄어든다. 이로 인해 싱크홀 현상도 야기된다.
올해 1월 환경부로부터 물순환 품질인증 기관으로 지정된 인증원은 투수성 포장재(빗물이 표면을 통과해 땅속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설계된 친환경 도로 포장재) 등 물순환 제품에 대한 품질인증 시행을 위한 기준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다양한 물순환 촉진 제품과 설비가 보급될 수 있도록 하며, 동시에 물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전문인력 양성과 지원 체계도 마련할 계획이다.
김 원장은 “통합적 물순환 관리 체계 구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임기 내(2026년 5월) 제도적 기반을 확립하고 미래 세대가 이어갈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에게 물은 ‘책임’이다. 그는 “물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공공재다. 모두의 권리이자 모두가 지켜야 할 의무인 셈”이라며 “하지만 대부분 권리만 주장하지 의무는 회피하려 한다. 물 관련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늘 큰 어려움이 따랐다. 특히 규제 성격의 정책을 도입할 때 이해관계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맑은 물은 공짜로 주어진 게 아니다. 수많은 갈등 조정과 보이지 않는 노력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물은 한 번 오염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자원이다. 개인은 일상에서 낭비를 줄이고, 사회는 재이용과 효율적 활용을 강화해야 한다”며 “현 세대가 깨끗한 물을 누리는 것은 물론 미래 세대에게도 건강하고 안전한 물을 물려주는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