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11월 결혼하는 30대 중반의 여성 권모 씨는 최근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업체의 상술을 떠올리면 아직도 화를 참을 수 없다. 권 씨는 “지방인 안동에서 결혼해서 수도권보다는 스드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고 업체들의 ‘갑질’이 덜하긴 하다. 그럼에도 스드메 업체들의 영업 행태가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촬영용 드레스 한 벌당 최대 30만원씩 추가금이 붙어서 드레스에서만 90만원의 추가금을 냈다. 바가지인 걸 알면서도 추가금을 안 낼 수가 없는 구조다. 예비부부들이 결혼 비용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이유가 이런 스드메 추가금 문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라고 밝혔다.
#다음달 결혼식을 올리는 30대 중반 남성 김모 씨는 결혼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스튜디오 촬영을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웨딩 사진을 찍었다. 김 씨는 “결혼식 자체를 올리지 않는 방안까지 생각할 만큼 웨딩업체의 갑질, 깜깜이 견적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했다”며 “스튜디오 촬영을 셀프로 대체하니 비용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또 스튜디오 촬영 때 도움을 주는 스태프들에게 간식 등 견적 외 현물성 예의를 표현해야 한다는 관행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결혼을 주저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웨딩플레이션(Weddingflation)’이다. 웨딩플레이션이란 결혼(Wedding)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결혼과 관련된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예식장과 스드메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결혼을 주저하는 예비 신랑, 신부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통계청 ‘2024 사회조사’에 따르면 미혼남녀들이 결혼하지 않은 이유로는 ‘결혼자금이 부족해서’가 31.3%로 가장 많았다.

특히 예비부부들은 스드메 비용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발표한 ‘결혼 서비스 가격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6월 계약 기준 스드메 패키지 중위 가격은 292만원이었다. 이는 추가 선택품목을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스드메 비용은 오래전부터 결혼 비용 부담을 늘리는 요인으로 꼽혀 왔다. 개인에게는 일생에 한 번뿐인 큰 행사라는 점을 악용해 일부 업체들은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물론 업체별 시세도 불분명해 비교가 어렵다는 불만이 꾸준히 제기됐다. 개별 스드메 가격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깜깜이 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추가금 폭탄’를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옵션을 강매하거나 명확한 사전 고지 없이 추가금을 부과하는 행태도 다반사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에 결혼준비대행업(웨딩플래너) 분야 피해상담 접수 건수는 2021년 790건에서 2023년 1293건으로 약 63% 증가했다. 최근 결혼식 준비에 한창인 방송인 윤정수는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스드메인지 수두룩인지 아주 미치겠다”며 “대한민국 결혼 문화 바뀌어야 한다”고 한탄해 많은 예비부부의 공감을 얻었다.
스드메 비용 부담에 짓눌린 예비부부들은 결혼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셀프 촬영을 하거나 명품 중고 플랫폼으로 혼수 예물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수도권에 사는 30대 여성 이 씨는 “스드메 비용도 비싸고 업체들의 배짱 영업 및 상술에 대한 반감이 커서 우리가 직접 사진을 찍기로 했다. 또 물가가 많이 오른 만큼 예물도 최대한 검소하게 하려 한다. 중고 구매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스드메 업체의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거래 관행 바로잡기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웨딩업체의 갑질(불공정 요구)을 근절하고 ‘깜깜이 스드메’ 가격 견적을 투명화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결혼 서비스(예식장업, 결혼준비대행업) 사업자에 요금 체계와 환급기준 등에 관한 세부사항을 미리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중요한 표시·광고사항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 했다. 개정안은 예식장업·결혼준비대행업 사업자가 기본서비스와 선택품목 항목별 세부 내용, 요금, 계약 해지 시 위약금 및 환급기준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했다. 공정위는 스드메, 예식장 등 결혼 서비스 가격을 공개하지 않는 업체에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또 국정기획위원회는 결혼 서비스 가격 투명화를 신속 추진과제로 실행하기로 했다. 조승래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업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세부 가격과 환불 조건 등에 대해 표시하시는 걸 의무화하는 게 필요하다”며 “관련 제도를 신속하게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최근 이재명 정부 첫 소비자정책위원회에서 “스드메 깜깜이 가격 같은 정보 비대칭 영역에서의 불공정 관행이 여전하다”며 “모든 관계부처가 소비자 권익을 침해하는 요소들에 대해 감시를 강화하고 관련 제도를 철저히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