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시장의 해외 개방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거래소와 해외 금제련업체가 한발 물러서며 절충안을 마련했다. 해외 업체의 시장 진입은 유지하되, 국내 영세 주얼리 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소매 및 장외시장 진출을 제한하기로 하면서 갈등 완화 기대가 커지고 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금시장 참여를 추진 중인 스위스 금제련업체 MKS팜프(MKS PAMP SA)는 국내 소매시장 진출을 무기한 보류하고, 장외시장에도 2년간 진입하지 않기로 했다. 당초 거래소는 장외시장 진출 제한 기간을 1년으로 검토했으나 업계 요구를 반영해 이를 2년으로 확대했다.
이번 합의는 업계 반발 속에 거래소와 해외 업체가 한발 물러서며 합의에 이른 결과다. 앞서 한국주얼리산업단체총연합회, 한국귀금속판매업중앙회, 월곡주얼리산업진흥재단 등은 청와대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등 반발을 이어왔다. 이들은 해외 제련업체가 국내 시장에 직접 진입할 경우 중소 제조·유통·소매 생태계가 위축되고 가격 결정권이 약화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논란의 출발점은 거래소의 제도 개편이다. 거래소는 지난달 KRX 금시장 운영규정을 개정해 외국계 법인의 시장 참여를 허용했다. 이에 따라 런던귀금속협회(LBMA) 인증을 받은 해외 금 생산업체는 ‘자기매매회원’ 자격으로 실물 금을 직접 공급할 수 있게 됐다. 기존 국내 금융투자업자와 은행 중심이던 공급 구조가 글로벌 제련업체로 확대된 것이다.
거래소는 금 수요 증가에 따른 가격 왜곡 해소를 제도 개편의 배경으로 들고 있다. 최근 안전자산 선호 심리 확대로 금 투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국내 금 가격이 국제 시세보다 높게 형성되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심화됐다는 설명이다. 해외 공급을 확대해 유통 마진을 줄이고 글로벌 가격과의 연동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거래소 관계자는 “현재도 일부 LBMA 인증 업체들이 장외시장에는 이미 참여하고 있다”며 “장내시장(KRX)과 장외시장의 연결 구조에 대한 오해가 있어 이를 일정 부분 분리하기 위해 2년 유예를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매시장 진출 우려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입장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해외 제련업체는 기본적으로 도매 중심 사업 구조를 갖고 있어 소매 영업망을 새로 구축할 유인이 크지 않다”며 “실제로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에서도 소매사업을 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반면 업계는 가격 상승의 원인이 국내 구조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수급 환경 변화에 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지난해 KRX 금시장에 역대 최대 규모의 금이 유입됐음에도 가격 괴리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단순한 공급 확대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기존에 국내 시장에 진출해 있던 LBMA 인증 업체들도 그간 KRX 금시장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시장에 개방될 경우 경쟁적으로 참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다른 해외 브랜드가 들어오면 기존 업체들도 따라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입장차 속에서 이번 합의는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속도 조절’ 성격으로 풀이된다. 해외 제련업체는 KRX금시장 내 거래 활성화와 유동성 공급 역할에 집중하고, 국내 유통시장에는 일정 기간 진입하지 않는 방식이다. MKS팜프 역시 한국 법인 설립 목적이 국내 유통 진출이 아닌 금시장 유동성 제고에 있다고 강조했다.
거래소는 향후 국내 업계와 추가 협의를 이어갈 방침으로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경쟁 기반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