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조만간 재개될 가능성이 있는 이란과의 종전 협상을 앞두고 대이란 압박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석유 수출 통로를 막고 가상화폐 자금까지 동결하며, 이란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는 동시에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하도록 압박하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미 재무부와 국무부는 24일 이란산 원유를 들여온 중국 대형 정유업체 헝리그룹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헝리그룹을 이란산 원유의 ‘최대 고객’ 가운데 하나로 지목하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미국은 중국 일부 정유사들이 제재 대상 원유를 매입함으로써 이란 정부와 군부에 실질적인 자금 지원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헝리그룹은 중국 다롄 지역 정유시설을 기반으로 하루 약 40만 배럴의 정제 능력을 보유한 업체로, 이른바 중국 민영 정유사인 ‘티팟’ 가운데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재무부는 이와 함께 제재를 피해 이란산 원유를 운반해온 ‘그림자 선단’ 관련 해운사와 선박 약 40곳도 추가 제재 대상에 올렸다.
이번 조치로 대상 기업과 선박의 미국 내 자산은 동결되며, 재산상 이익도 차단된다. 제재 대상이 50% 이상 지분을 가진 법인과 이들과 거래하는 기관도 제재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AP 통신 인터뷰에서 현재 해상에 있는 러시아산 및 이란산 석유의 구매를 일시적으로 허용한 제재 면제 조치를 갱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은 “우리는 (이란 해상을) 봉쇄하고 있고, 석유는 전혀 나오지 않고있다”며 “2∼3일 안에 그들은 (원유) 생산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이는 그들의 유전에 매우 나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란의 우회 자금 조달 통로로 지목된 가상화폐 시장에도 칼을 빼 들었다. 재무부는 이란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3억4400만달러(약 5000억원) 규모의 가상자산을 동결했다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OFAC가 이란 관련 “여러 지갑”을 제재하고 있다며 “테헤란이 자금을 생성·이동시켜 본국으로 가져오는 능력을 체계적으로 약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테헤란이 절박하게 국외로 이동시키려는 자금을 추적하고 정권과 연결된 모든 금융 생명선을 표적으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CNN은 이번 가상화폐 동결이 재무부 제공 정보를 토대로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 USDT 발행사 테더를 통해 이뤄졌다고 전했다.
앞서 미국은 이란 자금 유입 정황이 포착된 중국계 은행 2곳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이란을 겨냥한 경제 압박을 확대해왔다.
베선트 장관은 “‘경제적 분노’ 작전을 통해 이란 정권에 재정적 압박을 가함으로써 중동에서의 공격성을 약화하고, 그들의 핵 야망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란이 자국 석유를 글로벌 시장으로 이동시키는 데 의존하는 선박, 중개자, 구매자 네트워크를 계속 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무부 집계 기준으로 지난해 2월 이후 OFAC가 제재한 이란 관련 개인·선박·항공기는 1000건을 넘어섰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대이란 해상 봉쇄에 이어, 이란 최대 원유 수출 통로인 중국까지 겨냥해 향후 2차 협상에서 미국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