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미학을 현대 향수 언어로 재해석한 니치 향수 브랜드 ‘더에잇룸(The Eighth Room)’이 최근 공식 론칭했다.
더에잇룸은 조선 왕실의 공간과 일상, 감정의 흐름을 바탕으로 향을 설계한 브랜드다. 한국 문화가 지닌 절제미와 여백, 정중함, 내면의 깊이를 현대적인 K-럭셔리 감각으로 풀어내는 데 초점을 뒀다.
최근 K-콘텐츠, K-뷰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으며 한국적 정체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더에잇룸은 이러한 트렌드 속에서 조선 왕실이라는 문화적 자산을 향수라는 감각적 제품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한다. 브랜드가 주목하는 것은 왕실 공간 안에 흐르던 고요함, 격식, 감정의 절제, 보이지 않는 관계의 긴장감이다.
브랜드명인 ‘더에잇룸’은 조선 왕실의 삶을 둘러싼 일곱 전각과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상징적 공간인 ‘여덟 번째 방’에서 출발했다. 이 공간은 브랜드 세계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눈에 보이는 궁궐의 구조를 넘어 기록되지 않은 감정과 사적인 시간까지 향으로 표현하겠다는 기획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더에잇룸은 조선 왕실의 하루를 상징하는 향을 총 8개의 테마로 나눠 구성했다. 이 가운데 먼저 공개된 4개의 테마는 왕의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 왕비와 마주하는 순간, 평복을 입고 왕의 상징을 내려놓는 시간, 사냥을 통해 본능이 깨어나는 장면이다.
첫 번째 향인 ‘새벽(saebyeok)’은 왕의 하루가 시작되는 문안의 순간에서 영감을 받았다. 아직 세상이 완전히 깨어나기 전의 차가운 공기, 하루를 시작하는 결심, 예를 갖추는 태도를 향으로 표현했다. ‘숨결(sumgyeol)’은 왕비가 왕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말보다 오래 남는 존재감, 가까이 있지만 쉽게 드러나지 않는 감정, 관계 안에서 조용히 축적되는 기품을 향으로 해석했다.
‘바람(baram)’은 왕이 평복을 입고 저잣거리로 나서는 순간을 모티브로 한다. 왕이라는 상징과 지위를 잠시 내려놓고 한 사람의 존재로 머무는 자유로운 감각을 담았다. 궁궐 안의 격식과 궁궐 밖의 바람이 만나는 장면을 통해 인간적인 왕의 모습을 향으로 표현했다. ‘사냥(sanyang)’은 정적인 왕실 이미지의 이면에 있는 본능과 움직임을 다룬다. 멈춰 있던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 움직임 속에서 드러나는 긴장감과 위엄, 생동하는 에너지를 향으로 풀어냈다.
더에잇룸의 디자인 역시 한국적 미학의 관점에서 설계됐다. 조선 왕실, 전각, 왕과 중전, 팔각정 등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이를 직접적인 전통 문양이나 과도한 장식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병 디자인에는 균형감, 여백, 정적인 분위기, 절제된 고급감이 반영됐다. 이는 한국적 소재를 현대적인 럭셔리 언어로 번역하려는 브랜드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브랜드 세계관을 보다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디스커버리 세트 ‘왕의 하루’도 함께 선보인다. 해당 세트는 새벽부터 깊은 밤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향을 순차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소비자는 네 가지 향을 개별 제품으로 접하는 동시에 조선 왕실의 하루라는 하나의 서사를 따라가며 브랜드가 제안하는 한국적 감각을 체험할 수 있다.
더에잇룸을 기획한 장태환 대표는 “최근 니치 향수 시장에서는 향 자체뿐 아니라 브랜드가 제안하는 경험과 서사가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며 “더에잇룸은 조선 왕실이라는 한국적 소재를 바탕으로 시간과 감정을 향으로 체험하게 하는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