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종전 논의 과정에서 중동 주요 국가들에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문제를 계기로 중동 질서를 다시 짜려는 구상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복수의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3일 중동·이슬람권 주요 국가 정상들과 전화회의를 갖고 ‘아브라함협정’ 참여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전화회의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파키스탄, 튀르키예, 이집트, 요르단, 바레인 등 정상들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을 끝내는 합의가 성사될 경우 이들 국가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아브라함협정에 동참하길 원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아브라함협정은 트럼프 대통령 1기 때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일부 아랍 국가가 체결한 관계 정상화 합의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들어서도 협정 참여국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이번 발언은 이란과의 종전 합의를 발판으로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 간 관계 정상화를 넓히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란 문제를 군사·안보 현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전후 중동 질서 재편 구상과 연결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도에 따르면 모하메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 대통령 등 미국과 가까운 중동 지도자들은 통화에서 미국이 추진하는 이란과의 종전 합의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미국 당국자는 악시오스에 “모든 국가가 미국과 이란의 합의를 지지하며, 합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미국과 계속 협력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정상에게 다음 통화 상대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라고 설명하면서, 조만간 네타냐후 총리도 같은 논의에 함께하길 바란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브라함협정 참여 요구에 대해서는 일부 국가들이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파키스탄 등 이스라엘과 공식 외교 관계가 없는 국가 정상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당혹감을 드러낸 것으로 파악됐다.
한 당국자는 “잠시 정적이 흐르자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듣고 있느냐’고 농담을 건넸다”고 전했다.
아브라함협정 확대는 이스라엘에는 외교적 입지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면 다른 중동 국가들에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외면했다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에 대한 구체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일정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실제 협정 확대 가능성은 아직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악시오스는 미국과 이스라엘 관리들이 사우디가 오는 9월 이스라엘 총선 전까지 이 문제와 관련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