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대응을 위한 대규모 달러 매도 개입으로 외환 유동성 관리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최근 대미 전략 투자를 위한 첫 자산위탁을 단행했다. 한은은 법적 원금 보장 조항을 내세우고 있으나, 관련 법상 투자 손실이 누적되면 정부 재정으로 전액 보전하도록 규정돼 있어 잠재적 재정 부담 리스크가 제기된다.
8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은으로부터 제출받은 ‘대미투자 재원 조달 현황’ 자료에 따르면 한은은 최근 한미전략투자공사에 첫 자산위탁을 단행한 사실을 재확인했다. 앞서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 6일 국회 재경위 국정감사에서 대미투자 1차 사업을 위한 자금 24억달러를 지난 1일 미국으로 송금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한은은 이번 위탁의 구체적인 분담액과 계약 조건에 대해서는 비공개 입장을 고수했다. 한은은 “추후 대미투자 협상 등에 미칠 영향과 보안 사항 등을 고려해 첫 위탁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연 200억달러 한도…‘운용수익 범위 내’ 위탁 원칙
한미 양국 협력에 따라 추진되는 대미투자는 연간 최대 200억달러 한도로 집행된다. 대규모 외화자산이 장기간 해외 대체투자나 인프라 등으로 묶일 수 있는 만큼 외환보유액의 안정성과 유동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은은 자체 분담분에 대해 외환보유액 원금은 소진하지 않고 ‘외화자산 운용수익 범위 내’에서만 공사에 자산을 위탁한다는 기본 원칙을 세웠다. 지난 3월 제정된 한미전략투자법 제35조 제6항에 따르면 공사는 한은으로부터 위탁받은 자산에 대해 원금과 약정수익의 지급을 보장해야 한다. 한은은 이러한 법적 원금 보장 조항과 운용수익 범위 내 집행 방침을 근거로 외환보유액 훼손 위험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신현송 총재 “대미투자, 환율 부담 적다”…현물환 미수반·합의문에 근거
한은은 대규모 외화 유출에 따른 환율 불안 우려에 대해서도 파급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신현송 총재는 지난 8월 “연간 최대 200억달러 대미투자는 환율에 큰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외환보유액 운용 수익만으로 감당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은은 그 근거로 “대미투자의 재원 조달 방식인 외환당국의 외화자산 운용수익 범위 내 자산위탁, 공사의 정부 보증채 및 차입 모두 현물환시장에서의 외환 매입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미투자가 외환시장 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지난해 11월 ‘한·미 공동합의문’에 외환시장 불안정 초래 방지 및 시장 불안 시 우리 정부의 대미투자 조정 요청권 등 관련 내용을 명시했다”고 덧붙였다.
◆손실 시 세금으로 전액 보전해야하는데…사전 시나리오 분석·점검 없었다
다만 한미전략투자법 제38조 제2항에 따르면 공사의 결산 결과 손실이 발생해 적립금으로 이를 충당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결산순손실금을 전액 보전하도록 규정돼 있다. 한은은 법률상 원금 보장을 받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손실은 피할 수 있지만, 공사의 투자 실패로 결손이 누적될 경우 그 손실을 고스란히 정부 재정, 즉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 같은 대규모 재정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금을 직접 위탁하는 한은 차원의 사전 위험 분석이나 시나리오 점검도 전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한은은 “한국은행은 정부의 재정운용 관련 사항에 관여하지 않으므로 시나리오 분석 자료는 작성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환율 방어로 외환 유동성 관리가 민감한 시기에 대규모 대미투자의 투명성과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