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실손보험 문제는 시장 실패가 아닌 정책의 실패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시장 실패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한데, 그중 하나가 공급자와 소비자 간 정보의 비대칭이다. 대부분의 시장에서는 공급자가 소비자에 비해 더 많은 정보를 보유하지만 보험 시장에서는 주로 보험자(공급자)보다 피보험자(수요자)가 더 많은 정보를 보유한다. 특히 건강보험시장에서 정보의 비대칭이 심각하다. 

 

보험 시장에서는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역선택(adverse selection)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만연하고, 그 결과로 시장 실패가 발생한다. 건강보험시장에서의 역선택은 동 상품이 필요한 사람들이 주로 가입하게 되는 행태로, 쉽게 말해 건강이 좋지 않거나 걱정되는 사람들이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려는 경향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반면 도덕적 해이는 보험 가입 이후 리스크를 경감시키려는 노력이 감소하는 행태로,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이후 불필요한 의료 수요의 증가로 나타난다.   

 

주요국의 경우 민영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역선택의 경감에 집중된 반면 국내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주로 도덕적 해이 경감에 집중돼 왔다. 필자는 민영건강보험의 역선택을 실증하는 논문을 다수 작성하였는데, 주요 결론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본인이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곧 병원에 방문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할 가능성이 높고, 가입한 이후 즉각 병원에 방문한 이후 보험의 혜택을 본 사람은 가입을 유지하고 건강에 이상이 없으면 해약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한 역선택은 실손의료보험의 손해율과 보험료를 높이고, 나아가 실손의료보험의 순기능이 저해한다.  

 

역선택은 보험 가입이 의무가 아닌 이상 반드시 발생하는 가입자의 행태이기 때문에 소비자를 비난할 수 없으며 제도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보험회사는 리스크가 높은 사람(위험군)은 가입을 거절하는데, 이 역시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보험회사의 당연한 행태로 보험회사의 문제가 아닌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호주는 인구 고령화로 사회보험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인지하고 민영건강보험을 단순한 보험 상품이 아닌 의료보험제도로 발전시켜 왔다. 호주는 1984년에서야 본격적으로 전 국민건강보험(메디케어)을 도입했을 정도로 우리나라처럼 공적건강보험의 역사가 짧은데, 불과 10여년 뒤부터 민영건강보험의 의료보장 기능과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는 개혁을 본격화했다. 

 

모든 국민이 민영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보험료의 30% 정도를 리베이트로 되돌려주는 유인 체계를 도입했고, 심지어 저소득자도 민영건강보험에 가입하도록 별도의 보조금을 지원해준다. 이에 더해 2000년  Lifetime Health Cover(LHC)제도를 도입해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전 국민 민영건강보험의 가입을 추진한다. LHC는 30세 이전에 민영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매년 2%의 보험료가 가산되는 정책이다. 즉 40세에 민영건강보험이 필요해 가입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20% 높은 보험료를 납부해야한다. 

 

왜 호주 정부는 가능한 많은 국민들이 민영건강보험에 가입하도록 독려하는지, 심지어 의무보험제도와 같은 보험료 가산제도(LHC loading)를 민영건강보험에 적용하고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미연에 민영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다가 향후 아플 때 또는 아파질 확률이 높은 연령대에 가입하려는 가입자의 유인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물론 미리 민영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발생하는 피해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민영건강보험이 없어 적시에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고액의 진료비를 지불하거나, 치료를 위해 해외에 방문해야 하는 호주인의 모습은 매우 흔한 일이다. 이 때문에 민영건강보험의 가입률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기도 하다. 

 

정부 차원의 민영건강보험의 가입 활성화 정책의 수혜는 그 나라 모든 경제 주체에 귀속된다. 정부는 공적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개선시킨다. 국민들은 보다 합리적인 보험료를 지불하고 민영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린다. 시장의 확대는 당연히 보험회사도 반긴다. 물론 호주 정부는 보험회사에 채찍질도 멈추지 않는다. 바로 위험군의 가입 거절을 금지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험회사가 과도한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상품을 표준화하고 보험료의 비교 가능성을 높이는 정책을 강화해왔고, 올해에는 상품 표준화와 비교 가능성을 대폭 강화하는 채찍질을 더 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보험회사는 손해율이 높다며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고, 소비자는 보험료가 높아 가입과 유지가 어렵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부족한 정부는 손해율과 보험료를 낮추겠다며 상품 구조를 빈번히 변경하고 새로운 상품을 도입하며, 비논리적인 규제를 적용해왔다. 도덕적 해이의 경감에 집중한 정책은 '나쁜 소비자'를 벌할 수 있었지만 '의료 접근성'이라는 건강보험의 태생적 목적을 위태롭게 했고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결국 의료보험제도로 발전될 수 있었던 실손의료보험을 누더기 상품으로 전락시킨 것은 정부였다.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한 시장실패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보정될 수 있고 나아가 사회 후생이 확대된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 이론이지만, 시장 실패의 원인을 제대로 집어내지 못할 바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사회에 이롭다는 것도 경제학의 기본 원리다.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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