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정희원 기자] 광화문에서 한 시간 거리에 멋진 감성여행지가 있다. 바로 경기도 이천의 ‘도자예술마을’(예스파크)이다.
이천은 예로부터 왕실에 쌀과 도자기를 납품하며 해당 분야에 품질을 인정받아온 지역이다. 임금님이 즐기던 쌀밥과 도자기를 여행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연인·친구끼리 바람 쐬러 간단히 들러도 좋고, 아이와 함께 가족들이 체험학습을 오기에도 손색없다.

단,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다보니 ‘당일치기’로는 다소 아쉬운 마음을 느낄 수도 있다. 공방을 구경하며 생활자기 쇼핑에 나서거나, 도자기 만들기에 도전하거나, 넓고 멋진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즐기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나있다. 답답했던 마음을 이천에서 위로받았다.
◆하루만에 둘러보기 힘든 도자예술마을
이천시 신둔면 도자예술로. 이곳에 위치한 도자예술마을(예스파크)은 12만3000평 규모를 자랑한다. 마치 하나의 큰 갤러리 같다. 마을을 채우고 있는 200여곳의 공방·갤러리들이 마치 하나의 작은 세션 같다.

걸어서 도자예술마을의 모든 공간을 둘러보기는 다소 무리다. 이때 마을 입구의 관광안내소를 찾자.전동킥보드·골프카트 같은 수단을 빌려주니 편하게 다닐 수 있다. 널찍한 마을을 카트나 킥보드로 다니다보면 자연스럽게 ‘언택트 여행’이 실현된다.
여러 공방을 다니다 보면 ‘내 도자기 취향’이 무엇인지 명확해져 간다. 일부 작가들은 작품과 생활자기를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선보이기도 하니 좋아하는 작가의 공방 위주로 노선을 짜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하다.

◆직접 눈으로 보는 명장들의 작업과정
도자예술마을의 가장 큰 장점은 마음만 먹으면 좋아하는 작가를 직접 만나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운이 좋으면 작업 과정까지 볼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라쿠소성 기법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박종환 화목토 도예연구소장의 작업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한자로는 ‘락소’(樂燒)로 표기된다. 이는 일본에서 인기 있는 기법인데, ‘라쿠야키’로 불린다. 말 그대로 불을 때면서 즐거움을 만끽한다는 뜻이다.
라쿠소성은 뜨거운 도자기를 급냉시켜 실금이 생긴 부위에 연(燃)을 먹여 무늬를 새기는 기법이다. 저화도 유약을 사용해 2시간 정도 소성하면, 약 900도 정도에서 유약이 녹기 시작한다. 이 상태에서 가마문을 열면 도자기가 급냉되며 유약에 크랙(실금)이 간다. 이때 도자기를 왕겨·톱밥 등에 집어넣으면 크랙 사이로 연(燃)이 먹으며 다양한 무늬가 새겨진다.

라쿠소성 기법은 보는 사람이 즐거움을 느낄 만하다. 붉게 달아오른 도자기를 꺼내 톱밥에 넣자마자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릇을 꺼내보니 특유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어디서 이런 장면을 볼 수 있을까, 싶었다.
단, 일반 장작가마와 달리 가마문이 앞에서 한번, 위로 한번 열려 엄청난 열기와 연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박종환 소장이 고글·모자·장갑에 이르기까지 ‘완전무장’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들도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박종환 소장은 “라쿠소성은 일본의 잔재 같지만, 사실 기법을 개발한 것은 이 기법을 개발한 것은 조선도공 장차랑(長次郞)”이라며 “한국에서는 라쿠소성 기법을 내세우는 도예가가 적지만, 일본에서는 15대째 내려오며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자기 빚고, 나무로 서핑보드 만들고… 체험거리 ‘가득’
이천 도자예술마을에서는 장인의 작업뿐 아니라 하루 동안 ‘도예 체험’에도 나설 수 있다. 이날은 ‘들꽃마을’ 공방을 찾아 물레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공방에 들어서니 중년 남성이 물레를 돌리고 있다. 묵묵히 물레를 돌리는 도예가의 팔근육에서 ‘내공’이 느껴진다.
도예가 최현숙 씨가 반갑게 맞으며 자리를 안내한다. 물레 앞에 자리를 잡고 앞치마를 착용했다. 머리가 길면 물레에 낄 수 있으니 뒤로 깔끔하게 묶어야 한다.
이는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멋을 부리거나 현란한 스킬 대신 ‘차분함과 인내심’이 요구된다. 다리로 무게중심을 지지하고, 겨드랑이에 팔을 붙여 꾸준히 물레를 돌려야 한다.

이번에는 ‘샐러드볼’을 만드는 데 도전했다. 물레에 올린 흙덩어리를 위로 올려야 하는데 계속 제자리다. 결국 ‘도움!’을 외쳐 도예가의 1대1 지도를 받았다. 쉽지 않다며 한숨을 쉬자 최현숙 도예가는 “처음에는 당연히 그렇다”며 “도예학과 학생들도 1학년 한학기 동안 물레 중심을 제대로 세우는 것을 배운다”고 위로했다.
빚어진 그릇은 빠르면 2주 정도 뒤 받을 수 있다. 직접 가지러 와도 좋지만, 택배 배송도 가능하다.

예스파크 내에는 도자기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공방이 자리하고 있다. 만약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목공방 ‘라우프로덕트’를 찾아보자. 다양한 목공예에 도전할 수 있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서핑보드’를 만들 수 있다. 배우 정해인이 삼성화재 CF를 찍기 위해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자신만의 서프보드를 갖고 싶어 하는 서핑 마니아들에게 권할 만하다.
◆이천의 핫플레이스 ‘카페 웰콤’
이천을 찾았으니 이곳만의 ‘핫플레이스’도 둘러봐야 한다. 도자예술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베이커리 카페 ‘웰콤’을 강력 추천한다. 훌륭한 음식, 시선을 사로잡는 재미있는 비주얼, 통창·백자 소품이 가득한 사진 찍기 좋은 인테리어까지 ‘핫플’의 면모를 모두 갖췄다.

시그니처 메뉴는 ‘옹기 티라미수’와 ‘쌀밥 빙수’다. 작은 솥에 들어 있는 빙수에는 실제로 누룽지가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한입 드셔보시라. ‘바닥에 카라멜소스와 누룽지가 붙어 있으니 박박 긁어 드시오’라는 설명이 재밌다.
짙은 갈색의 작은 항아리 그릇에 솔찬히 담긴 티라미수도 특색있다. 티라미수를 담은 옹기는 도자예술마을의 양점모 작가가 만든 작품이다.

이 곳에서는 매일 새벽 4시부터 생산하는 다양한 ‘유럽식 빵’을 만나볼 수 있다. 호밀가루와 밀가루를 섞은 것에 천연발효종을 더한 ‘깜빠뉴’는 ‘인생 빵’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맛있다. 겉은 바삭, 속은 쫄깃하고 특유의 담백함이 매일 먹고 싶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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