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쇼크라더니… ‘부동산 포비아’만 키웠다

집값 상승세 그대로… 반복된 대책에 시장 내성 생겨
구체적 공급 시기·부지 발표 미뤄지며 무주택자 혼란

부동산업계에선 정부의 공급대책 ‘풍선효과’로 신축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서울의 한 공인중개업소. 연합뉴스

[세계비즈=박정환 기자] 정부가 집값 안정과 전세난 해결을 위해 역대급 ‘공급 폭탄’을 예고했지만 시장은 요지부동이다. ‘공급 쇼크’ 수준이라는 정부의 자평이 무색하게 ‘2·4 대책’ 발표 후 2주가 지난 현재까지 집값 안정 시그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구체적인 공급 시기와 부지 등이 빠진 공수표 대책 탓에 실수요자들의 ‘부동산 포비아(공포증)’만 확산되고 있다. ‘풍선효과’로 인한 신축 아파트 가격 상승, 재산권 침해 논란 등 부작용도 적잖다.

 

◆집값 상승세 그대로, 내성 생긴 시장

 

1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2·4 대책’ 발표 이후에도 주택 매수 심리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결과 지난 8일 기준 수도권 아파트 매매수급 지수는 118.8로 전주(118.2)보다 0.6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한국부동산원이 조사를 시작한 2012년 7월 이후 최고 수치다. 부동산원 관계자는 “그동안 가격 상승폭이 높던 일부 지역은 2·4 대책 발표 후 관망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저가 아파트에서 매수세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책 발표 후 아파트값 상승률은 소폭 감소했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실제로 과거에도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 직후 매물과 거래 건수가 급격히 줄며 시장이 일시적으로 안정세를 보였다. 그러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서 이전보다 높은 가격에 주택 거래가 이뤄지며 거래량이 늘고 다시 전국적으로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반복됐다. 25번에 걸친 부동산 대책에 따른 학습효과로 시장이 내성이 생긴 셈이다.

 

◆실체 없는 대책에 혼란만 가중

 

공급 대책의 ‘약발’이 먹히지 않는 것은 구체적인 실체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2·4 대책’을 통해 4년 내 서울 32만호를 포함, 전국에 83만6000호를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공공주도 개발사업이 진행될 구체적인 시기와 부지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한 방송에 출연, 신규 공공택지 지정과 관련해 “택지개발지구 20곳이 사실상 확정됐지만 지방자치단체 협의 등으로 늦어지고 있다”며 “확정되는 대로 올 상반기 2~3차례에 걸쳐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입주할 수 있는 단기 공급물량이 거의 없어 무주택자들의 주거 불안감 해소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세부적인 공급 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각종 규제만 더해져 시장 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2·4 대책에 따르면 정부 발표일인 지난 4일 이후 사업 후보지 내 주택을 매입한 사람은 우선공급권을 받을 수 없다. 매수한 주택은 감정가에 기초해 현금 청산된다. 이럴 경우 투기 목적이 아닌 실거주를 목적으로 주택을 매수했다가 집도 잃고, 돈도 잃는 애먼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예고한 공급물량의 절반도 충족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는 공공사업인 만큼 사업 후보지 거주민, 민간 아파트 조합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실제 공급 물량은 많아 봐야 계획의 30~40%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신축 아파트로 번지는 풍선효과

 

공급 대책의 ‘풍선효과’로 신축 아파트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는 것도 우려되는 부작용이다. 현금 청산 우려로 사업 후보지 내 빌라 거래가 급감하고, 민간 브랜드 아파트 공급에 대한 기대감이 줄면서 신축 아파트 호가가 급등하고 있다.

 

내년 11월 입주 예정인 덕은동 DMC 리버파크자이 전용 85㎡ 분양권 시세는 13억원대에 형성됐다. 지난해 9월 분양 당시 금액인 9억3000만원보다 4억원 가까이 올랐다. 다음달 입주하는 마포구 염리동 ‘마포프레스티지 자이’ 전용 59㎡도 ‘2·4 대책’ 발표 후 호가가 1억원 이상 뛰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공공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은 당분간 매수세가 사라지겠지만 그에 대한 풍선효과로 새 아파트에 수요자들의 관심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의도와 달리 공공 주도 재개발·재건축으로 오히려 수도권 집값이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재개발이든, 재건축이든, 환경정비든 노후된 시설이 개선되면 부동산 가격 상승은 필연적”이라며 “다수의 개발 사업이 동시에 이뤄지면 그만큼 집값 상승 가능성도 커져 순차적인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pjh121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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