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비즈=권영준 기자] 2020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에 빛나는 여자 양궁 대표팀의 안산은 대회 결승 직후 정의선 현대자동그룹 회장을 만나 자신이 획득한 금메달을 목에 걸어주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이 장면을 지켜본 국민도 함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의 최대 성과는 비인기 종목의 성장이었다. 양궁은 세계최강이라는 부담감을 이겨내며 정상의 자리를 지켰고, 안산과 김제덕이라는 신예 등장으로 국민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펜싱 역시 금 1개, 은 1개, 동 3개의 메달을 휩쓸며 올림픽 무대를 달궜다. 남자 체조에서도 신재환이 정상에 올랐고, 여서정은 여자체조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비록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했지만, 남자 수영의 황선우는 아시아 신기록을 갈아치웠고, 여자배구 역시 김연경을 중심으로 4강 신화를 썼다.
▲선수단의 노력… 현대차그룹, SK그룹, KB·신한금융그룹 후원으로 ‘열매’
올림픽 성과의 공통점을 꼽자면, 단연 선수단의 피와 땀, 눈물이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국내 기업의 후원을 빼놓을 수 없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1985년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을 시작으로 2005년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까지 37년간 양궁협회에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현대차그룹이 그동안 양궁 기술 지원, 인력 육성 등에 투자한 금액은 500억원을 훌쩍 웃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거액만 지급하는 보통의 후원이 아니다. 대한양궁협회 시스템을 재구축하며 불합리한 관행을 모두 제거했고, 유소년부터 국가대표에 이르는 우수 선수 육성 체계를 새롭게 정의했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첨단 R&D 기술을 접목해 훈련장비와 훈련기법을 적용했다. 무엇보다 정의선 회장은 선수단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며 부담감을 덜어주는 등 양궁계 대부 역할을 톡톡히 했다.
SK그룹 역시 펜싱의 든든한 후원 기업이다. 2003년부터 올해까지 19년간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아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SK가 펜싱협회에 지원한 금액만 총 24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 역시 국가대표 경쟁력 강화, 저변 확대, 지속가능한 기반 구축을 목표로 중장기 전략 수립을 돕고 단계별로 경기력 강화와 펜싱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KB금융그룹은 비인기 스포츠 종목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한국 여성 체조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여서정, 자유형 100m 결승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5위에 오른 황선우는 KB금융그룹이 ‘스포츠 Z세대 유망주 육성’ 사업을 통해 후원하고 있는 선수들이다.
신한금융그룹은 지난 2018년 배구협회와 공식 후원 협약을 맺고 국내 배구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4강 진출에 성공한 대한민국 여자배구대표팀에 격려금 2억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여자배구대표팀은 매 경기 투혼을 펼치며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다”고 격려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기업의 스포츠 후원 ‘신개념 ESG’
기업의 비인기 종목 후원을 두고 대부분 홍보 효과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물론 기업의 후원이 성공을 거두면 이미지 개선, 인지도 상승, 브랜드 노출 효과를 모두 거둘 수 있다. 실제 스포츠 빅데이터 업체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0%가 올림픽 성적이 후원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스포츠마케팅 실무자는 “대기업이 홍보 차원에서 스포츠 후원 사업을 한다면, 국내 비인기 종목이 아닌 EPL, 윔블던 테니스 대회, PGA 및 LPGA 골프대회, 미국 슈퍼볼 등에 후원사로 참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며 “브랜드 노출 효과는 물론이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더 큰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즉, 기업의 국내 비인기 종목 후원은 단순히 홍보 효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왜 비인기 종목에 시간과 돈, 노력을 쏟으며 후원하는 것일까. 이제는 기업의 후원을 ‘ESG’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의미하는 ESG는 기업의 가치, 해당 기업의 이해관계자가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비재무적 요소들이다.
언뜻 비인기 종목 후원, 올림픽과는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연결고리는 분명하다. ESG 중 사회(Social) 카테고리에는 사회의 관계, 공동의 가치, 사회적 가치, 다양성 등이 존재한다. 이는 기업 구성원, 즉 노사 관계에 해당하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소비자와 국민을 포괄하기도 한다. 국민 상당수가 현대차를 타고 있고, SK텔레콤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으며, 신한 및 국민은행을 이용한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선보인 선수단의 노력과 투지, 도전은 코로나19에 지친 국민에게 잠시나마 위로와 감동을 선물했다. 양궁 김제덕이 외친 ‘코리아 파이팅’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기도 했다. 이것만으로도 공동의 가치, 사회적 가치가 발현된다.
여기에 단숨에 스타로 급부상한 선수들은 광고 시장의 블루칩이 되면서 기업의 마케팅 활동을 영향을 미쳤고, 해당 스포츠는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스포츠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림픽이 아니었다면 후원하고 있는지도 모를 기업의 지원이 사회에 어마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과거 기업의 스포츠 후원 사업은 소비자를 통해 얻은 물질적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단순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고, 기업의 움직임도 변화의 급물살을 탔다. 기업 관계자는 “책임감에서 시작한 기업의 비인기종목 후원이 이제는 자금 지원을 넘어 선수단이 쏟고 있는 불굴의 의지와 도전, 노력과 열정에 후원하는 개념”이라며 “이를 통해 전해지는 감동 등 무형의 가치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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