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 기자] # 산책할 때는 이탈리아산 ‘몽클레르 패딩’을 입고, ‘톰브라운’의 리드줄을 맨다. 돌아와서는 호주의 유기농 브랜드 ‘이솝’ 클렌저로 씻는다. 가끔은 가족과 함께 ‘호캉스’를 떠나기도 한다. 50∼100만 원대 패딩, 500㎖에 5만원은 넘는 목욕용품이지만 반려인들은 ‘전혀 아깝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1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금쪽같은’ 반려견을 위해 모든 것을 최고로 준비하는 반려인이 증가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여행·외출 대신 명품 수요가 높아지며, 자신뿐 아니라 ‘반려동물용품’으로도 눈을 돌리는 것.
1인 가구 및 딩크 부부가 증가하는 데다가, 팬데믹 사태가 겹치며 반려동물과 나누는 감정적 유대감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가족인 반려동물에게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을 해주려는 마음은 커진다.
이같은 흐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요즘 국내 네 가구 중 한 집은 적어도 한 마리 이상의 반려동물과 산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1 한국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반려 가구는 604만 가구로, 전체의 29.7%를 차지하고 있었다. 반려인은 1448만명으로 집계됐다.

귀여움으로 무장한 작고 복슬복슬한 강아지·고양이들이 경제를 움직이는 한 축이 됐다. 미디어에서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SNS에서는 인플루언서 못잖은 인기를 누리는 ‘펫플루언서’(펫+인플루언서의 합성어)도 많다. ‘펫’으로 시작되는 다양한 신조어도 쏟아지고 있다.
2012년 9000억원 규모에 그쳤던 국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올해 6조 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이미 4조원 시장의 국내 육아용품 산업 규모를 뛰어넘었다. 반려동물을 위한 미용·패션 분야도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명품 브랜드들은 일찌감치 반려동물 시장에 진출해 ‘펫미족(펫+자신을 합친 신조어)’의 지갑을 열게 하고 있다. 과거만 해도 ‘강아지·고양이에게 무슨 명품?’이냐며 심드렁했던 국내 반려 인들도 이제는 ‘펫셔리(펫+럭셔리를 합친 신조어)’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
다만 반려동물을 위한 명품은 아직 백화점 등 오프라인에서 구매가 쉽지 않아 해외 직구를 통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 국내 럭셔리 플랫폼 캐치패션은 리빙 카테고리에 반려동물을 위한 명품만 모은 ‘펫’ 섹션을 추가하기도 했다.

명품계 ‘대장’인 에르메스도 최근 반려동물용 식기, 침대, 바구니 등을 선보였다. 오크 나무로 만든 밥그릇 하나만 해도 약 150만 원대다.
루이뷔통·프라다·펜디 등은 각각 시그니처 패턴을 강조한 ‘로고 플레이’에 나서고 있다. 이를 적용한 코트 등 의류, 리드줄, 이동장, 휴식을 위한 방석 등을 선보이고 있다. 이동장의 경우 각 사 핸드백값 수준이다.

추운 겨울, 따뜻한 산책을 위한 ‘명품 패딩’도 선보인다. 몽클레르는 지난해 가을·겨울 시즌에서 ‘몽클레르 폴도 도그 쿠튀르’ 컬렉션을 론칭했다. 기존 나일론 라케 소재의 클래식 패딩 조끼에 목걸이, 목줄, 이동용 가방 등을 더했다. 반려인과 함께 ‘커플룩’으로도 연출할 수 있다. 프라다도 200만 원대 반려동물용 패딩을 선보였다.

모스키노도 2021 가을·겨울 시즌 최초로 펫 컬렉션을 통해 브랜드를 대표하는 ‘바이커 재킷’을 모티브로 한 반려동물용 가죽 재킷을 내놨다.
럭셔리 뷰티 브랜드에서도 반려동물용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이탈리아 화장품 브랜드 산타마리아 노벨라의 펫 컬렉션을 판매하고 있다. 샴푸부터 향수, 강아지·고양이 전용 탈취제(데오도런트)까지 구비했다.
백화점에서는 호주 럭셔리 뷰티 브랜드 ‘이솝’, 로레알그룹의 ‘키엘’ 등에서도 펫 뷰티 용품을 만나볼 수 있다.
‘콧대 높은’ 5성급 호텔도 반려동물 고객 모시기에 나섰다. 롯데호텔은 내년 2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반려동물 출입을 허용한다. 롯데호텔은 지난달 처음 ‘VIP(Very Important Pet)’를 내세운 ‘펫캉스’ 패키지를 도입했다.

조선팰리스도 특정 객실에서 반려견과 숙박이 가능하다. 반려동물용 쿠션, 식기, 욕조, 장난감을 제공한다. 최근 포시즌스호텔도 반려동물 동반을 허용했다. 일반 객실에서도 청소비용 25만원을 추가하면 함께 투숙할 수 있다.
반려동물 전용 조식과 생일파티까지 해주는 밀레니엄 힐튼 호텔의 반려동물 동반 패키지는 일찌감치 ‘완판’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펫시장이 다양한 범위로 확장되면서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며 “국내의 경우 펫시장의 성장 잠재력에 대기업들도 영역을 확장하고, 럭셔리 브랜드와 중소기업까지 가세하며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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