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목소리를 들어라 <上> ] 규제혁파, ‘탁상공론’ 도돌이표 뗄까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줄곧 강조해왔던 것이 ‘규제 완화’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흐지부지되는 게 다반사였다. 문제는 정책 입안자들이 현장을 도외시한 채 탁상공론식의 규제 완화책을 추진하다보니, 현장에서 느끼는 애로사항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스타트업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해결책은 없는 지 시리즈를 통해 진단한다. <편집자 주>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관련 합동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추경호 경제부총리,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1차관. 사진=뉴시스

[김진희 기자] 윤석열 정부가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적 불확실성을 신속히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를 과감히 풀어주겠다는 것이지만, 진정성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일 정부 및 경제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발표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은 ‘기업과의 협력’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그동안 제기했던 ▲중대재해처벌법 보완 ▲주 52시간제 유연화 ▲최저임금제 개편 등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또 대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대기업집단 내부 거래 규제 ▲금산분리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 등 자본과 소유에 대한 규제도 제자리 걸음이다.  

 

 선결 과제들이 막혀 있으니 미래를 준비하기도 어렵다. 반도체, 배터리 등 국가 전략사업 분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지 못하는 것도 불필요한 규제 탓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자율주행차, UAM(도심항공교통) 등 모빌리티 분야 경쟁에서도 과거에 만들어진 법규와 규제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일각에선 기업들이 처한 구체적인 애로사항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인 만큼 더 적극적인 소통 채널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 중 노동시장 개혁 부분을 살펴보면 크게 ‘중대재해처벌법’과 ‘주 52시간 근로시간’ 제도를 손질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올해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법처벌법에 대해 경제계는 모호한 규정과 과도한 처벌을 우려하며 수정·보완을 요구해왔다.

 

 정부는 우선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로드맵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경영책임자 의무 명확화를 위한 시행령 개정 등 재해예방 실효성 제고 및 현장애로 개선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

 

 주 52시간 근로 제도 개편도 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에 포함되기는 했으나 갈 길이 멀다. 실태조사 및 현장분석, 노사 의견수렴 등을 거쳐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여소야대 국면인 상태라 난항이 예상된다.

 

 최저임금제 개편 역시 불투명하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업종별 최저임금 적용을 다르게 하는 최저임금제 개편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당장 내년도 최저임금의 차등 적용은 무산됐다. 최저임금 심의·의결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16일 ‘업종별 차등 적용’ 여부를 표결한 결과 찬성 11명, 반대 16명으로 부결됐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영계는 정부 발표 즉각 우려와 유감을 표명했다. 경총은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시장의 수용능력에 대한 고려없이 지나치게 빠르게 인상되고 일률적으로 적용돼 일부 업종은 현 최저임금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그러나 최저임금위원회가 또다시 단일 최저임금제를 결정함으로써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절박한 현실과 바람을 외면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과는 별개로 내년도 최저임금을 확정하는 논의는 21일 본격화될 전망이다. 노동계는 1만원이 넘는 금액을 제시할 것으로 보이나 경영계는 올해와 동일한 9160원으로 동결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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