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상추, 깻잎을 리필해달라고 하는 것도 눈치가 보일 정도예요.”
“손님께 더 드리고 싶어도, 그러면 정말 남는 게 없어요.”
용산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고기 주문시 기본으로 제공하는 상추를 상차림에서 제외했다. A씨는 “연초에 이미 채소 가격이 많이 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최근 폭염에 폭우까지 이어지면서 매일 채소 가격 확인하는 게 무서울 정도”라며 “요즘 상추를 ‘금(金)추’라고 한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기본 반찬에서도 아예 빼고 있다”고 호소했다.
사장님도 손님도 치솟고 있는 밥상물가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폭우, 폭염, 여기에 국제 정세까지 ‘삼중고’로 인해 농산물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밥상물가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에 따라 당분간 물가 흐름도 불안정할 전망이다.
2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날 오전 6시 기준 농작물 3만3004.9ha(헥타르)가 침수됐다. 이는 여의도 면적(290ha)의 114배에 달한다. 비닐하우스와 축사 등 농업시설도 52.0ha가 파손됐다. 농경지 유실·매몰도 450.7ha에 달했으며 가축도 79만7000마리가 폐사했다.
장마철을 맞아 가격 상승세인 농산물은 역대급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와 맞물려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전날 기준 상(上)품 적상추 4㎏ 도매가격은 전달보다 무려 219.7% 오른 6만580원으로 집계됐다. 적상추는 지난해보다 24.3% 올랐다. 같은 등급의 청상추 4㎏은 전달보다 221% 상승해 6만480원이다. 상품 시금치 4㎏은 5만980원으로 전달보다 192.9% 올랐다. 상품 얼갈이배추 4㎏은 한 달 전보다 144.6% 오른 1만5020원으로 조사됐다.
축산물 가격도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폐사한 가축의 93%가 닭으로 집계되면서 여름철 수요 증가로 가격 강세를 보이는 닭고기 물가가 더 오를 전망이다. 하반기에는 원윳값 인상이 예정돼 밀크플레이션 우려도 있다. 낙농진흥회 소위원회는 전날 원유 가격 조정 협상을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오는 24일 협상을 재개한다.
전 세계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업+인플레이션)에서 숨통을 트이게 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흑해곡물협정이 러시아의 연장 거부로 지난 17일 만료돼 세계 곡물가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흑해 항로를 통한 곡물 수출길이 막히면서 우리나라도 밀과 관련된 가공식품 가격이 인상될 수 있다.
미 시카고상품거래소(CBT)에서 밀 선물 가격은 이날 전 거래일 대비 3.0% 오른 부셸당 6.81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옥수수(+1.4%), 콩(+1.1%) 등 흑해를 통해 실어나르던 곡물들의 선물 가격도 일제히 상승했다. 다만 브라질 등 다른 국가에서의 생산량이 늘어 최근 밀 가격은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던 2022년 3월 대비 54%, 옥수수 가격은 10년 만에 최고치였던 2022년 4월 대비 37% 낮은 수준이다.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를 높여 각국에 가뭄과 폭염, 폭우 등 이상기후를 몰고 오는 엘니뇨도 농산물 가격을 뒤흔들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주요 쌀 수출국인 인도와 필리핀, 태국 등에서 강수량 부족으로 쌀 생산량이 급감한 가운데 쌀 국제가격의 벤치마크인 태국산 쌀 수출가격은 t당 535달러로 지난 4개월 동안 15% 상승해 2021년 3월 이후 2년4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이에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한 각종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21개월 만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에 진입하는 등 안정세를 찾아가는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없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삼중고’를 겪으며 들썩이고 있는 밥상물가와 함께 교통비 인상은 물론 전기세,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물가가 전체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재부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3.5%에서 3.3%로 내렸지만, 3%대 초반 물가상승률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집중호우로 피해가 발생한 농가들을 찾아 “신속한 시설채소 재파종 지원 및 조기 출하 유도, 닭고기 공급 확대 등을 통해 밥상 물가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주형연 기자 jh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