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리경제학적 분열 시대 대비해야

법무법인(유)지평 기업경영연구소 정민 수석연구위원

 

 

 지리경제학적 분절화가 심화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세계 경제 통합’ ‘자유무역’ ‘세계화’ 등 인류 공동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가치보다는 ‘자국 이익 또는 안보’가 우선시되는 모양새다. 

 

 세계화(Globalization)는 사상, 사람, 재화, 서비스 그리고 자본의 자유로운 국제적인 이동이 증가하면서 경제적 통합 수준이 높아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1980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8년까지 중국을 중심으로 많은 신흥국이 무역장벽을 제거하는 동시에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면서 세계 경제 시스템 통합과 경제협력 시대를 열게 됐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창설 등 자유화 시대가 열리면서 무역뿐만 아니라 외국인 직접 투자 등 국제 자본흐름도 늘어나고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상호 연결성과 복잡성도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8년부터 2021년은 국제 금융 거래와 교역 확장이 둔화하면서 세계화의 정점을 현상이 나타나는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zation)’ 시기를 맞이했다. 그동안 진행됐던 세계화는 거래비용 감소, 경제적 효율성 강화, 빠른 기술 확산 등 혜택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노동 소득의 감소와 숙련도에 따른 불평등과 같은 분배 상의 문제점 등 불만도 커졌다. 

 

 점차 세계화가 약화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극심한 공급망 위기를 경험한 국가들은 ‘자국 안보’와 ‘전략적 핵심 요소’라는 명분 아래 일부 원자재의 무역이나 투자를 제한하고 핵심산업에 대한 자국중심주의 산업정책이 경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특히 미·중 간 무역·기술 갈등이 고조되면서 세계 경제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세계는 미국 우호국, 중국 우호국, 중립적인 국가 등으로 ‘분절화’의 위험에 직면했다.

 

 올해 연초 IMF에서 발간한 지경학적 분절화와 다자주의의 미래보고서에서 지적했듯이 분절화가 심화할수록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7%의 규모의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렇게 큰 비용 손실도 문제지만 기후변화 등 국제 협력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서도 해결책을 좀처럼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국가 또는 지역 간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고 최근 세계 경제를 뒤흔든 충격으로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졌다. 이러한 확실성의 고조는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곧 발표될 IMF의 2023년 10월 전망에서도 지리경제학적 분절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반영될 것이다. 또한, 지난 9월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수석 경제학자들의 예측 보고서에서도 지정학적 리스크가 향후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10명 중 9명이 응답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성과는 외생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올해 하반기, 내년에도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수반하리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버팀목인 수출이 조금씩 살아날 조짐이 보인다. 한국 수출단가와 물량 모두 지난달보다 양호했고, 반도체 수출 회복세로 수출 감소 폭이 축소됐다. 반도체, 자동차 등 주요 수출 품목의 회복에 힘입어 국내 생산과 투자도 개선되면 국내 경기는 완만한 반등이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 심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다양한 불확실성이 펼쳐져 있는 상황에서 섣부른 경기 낙관론보다 경기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불씨를 살려야 할 것이다. 비상한 각오로 세제, 금융지원 등 전방위 지원책을 통해 수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무엇보다 지경학적 분열 시대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분열이 가속화되면 모든 국가가 패자가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신중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방적인 정책보다 경제적 실익을 고려해 균형을 맞춰야 할 것이다. 다양한 국가와의 공급망 연계를 강화하면서 무역과 투자를 다변화하고, 다자 대화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정부의 현명한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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