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기업 리스크 예방은 결국 사람 관리 문제다

군 소대장 시절 중대장 이상 지휘관들에게 들었던 가장 많은 잔소리는 “인원들 통제 안하느냐”였다. 지휘관이 보기에 이미 스무살이 넘은 성인인 병사들은 믿어선 안되는 존재였고 통제하지 않으면 사고를 일으키는 위험 요소였다. 그러나 그렇게 병사 통제를 최우선에 뒀던 군대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사례가 전파되곤 했다. 탈영부터 총기 오발, 폭발까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다.

 

철책 근무 시절 전방 아군 전방전초(GP) 인근에서 발목지뢰가 터지는 아찔한 사고를 직접 곁에서 경험한 적도 있다. 순찰 도중 비무장지대 쪽에서 쾅 소리가 났고 이내 경계태세를 높이는 등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당시 비무장지대에 있던 GP에 고위 장성의 방문이 예정돼 있어 GP 전방 제초작업을 당시 상부에서 무리하게 시켜 발생한 사고였다. 제초 작업을 위해 철책 밖에 나갔던 병사 한 명이 발목지뢰를 밟았고 곧바로 터진 것이었다. 불행히도 해당 병사는 한 쪽 발목을 절단해야 했다. 당시 고참급 부사관이 했던 말이 지금도 떠오른다. “긴장 안하면 사고가 나는 거예요. 지금 군대는 너무 애들을 풀어줬어요.” 위험한 데도 안전 조치 없이 무리하게 작업을 시킨 상급자들의 잘못인 데도 그런 말이 나오다니 경악했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그나마 당시만 해도 이런 사고로 상급자들이 징계를 받았다. 1980년대에는 더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어물쩍 넘어가곤 했다고 한다. 공식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나 이 시기 국방부 추산으로 1000명에 가깝던 매년 군 내 사망자 수는 군대 내 인권 강화 후 두 자릿수로 급감했다.  

 

소위 임관 직후 신임장교 교육 기간에만 해도 군에 대한 자긍심은 상당히 올라갔었다. 당시 정훈장교인 교관의 수업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는 신임장교들에게 대한민국의 조직에 대해 “모든 조직의 출발은 군대였다”면서 “기업, 정부 조직의 모든 문서양식과 조직 체계는 군대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군부 독재의 산물인 듯해 씁쓸할 수도 있지만 실제 그 교관이 설명한 사례처럼 정부부터 기업, 심지어 노동조합까지 조직 구성이 군대 조직과 비슷했다. 문서 양식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해당 교관은 대한민국 군대가 엘리트의 산실이라는 강한 자신감마저 드러냈고 어느새 공감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런 자랑스러운 조직이라던 군에서 깨달은 것은 사람 관리를 참 못한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군에서 가장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병사들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그러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말년에는 누구나 병사들이 어려움을 호소해도 “빠져 가지고” “군대는 힘들어야 돼” 같은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곤 했다. 그리고 전역 후에 인근 전방부대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지는 걸 보면서 차별과 혐오를 제대로 막지 못한 군 내부의 사람 관리 실패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대한민국 직장 문화 역시 군대 문화의 연장선 상이다.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직원들을 갈아넣어 회사를 운영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대기업에 강한 노동조합까지 있는 회사라면 사회 여론의 눈치를 보고 노동조합의 견제 때문에라도 사람을 함부로 다루진 못한다. 그러나 대다수 기업들은 사람 관리가 엉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내부직원의 일탈로 개인정보가 유출된 거대 플랫폼 기업부터 각종 중대 재해로 인한 사망 사건으로 지탄을 받는 건설기업까지 결국 문제의 근원은 사람 관리라고 볼 수 있다. 효율적인 전투 또는 영업을 위해 최적화된 시스템을 갖춘 대한민국 조직문화는 사람 관리만 빼놓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떠나거나 제거당한다. 그런 회사일수록 사람의 생명이 걸린 사고부터 어마어마한 보안 문제까지 리스크도 커진다. 애초에 직장 내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문화였다면, 실무 담당자가 안전과 효율을 위해 건의한 사항들을 무시하는 조직 문화가 아니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들이다. 

 

AI 혁신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들은 많지만 정작 기본인 사람 관리에 대한 언급은 우리 언론이나 전문가들 발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아직도 사람이 아니라 소모품으로, 함께하는 동반자가 아니라 통제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조직문화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한준호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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