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첫 월드투어’ 르세라핌, 시련 딛고 다시 피어나

그룹 르세라핌이 19~20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월드투어 '이지 크레이지 핫'을 개최했다. 쏘스뮤직 제공.

지난 1년 간의 시련을 딛고 당당히 무대에 섰다. 150분간 쉼 없이 이어진 라이브 무대는 그간 꼬리표처럼 따라온 가창력 논란을 말끔히 씻을 만큼 강렬했다. 각종 분쟁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긴 고통의 시간도 꿋꿋이 버텨냈다. 가시밭길에도 묵묵히 곁을 지킨 피어나(공식 팬덤명)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긴 터널을 벗어난 르세라핌이 더 빛나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르세라핌이 20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2025 LE SSERAFIM TOUR ‘EASY CRAZY HOT’ IN INCHEON’을 개최했다. ‘이지 크레이지 핫’이라는 공연명에서 알 수 있듯 지난해 2월 발매된 미니 3집 ‘이지(EASY)’, 8월 공개된 미니 4집 ‘크레이지(CRAZY)’ 그리고 지난달 선보인 미니 5집 ‘핫(HOT)’으로 이어지는 3부작 프로젝트의 피날레다. 3개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르세라핌과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 뜨겁고 재미있게 놀아보자’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공연의 첫 섹션은 ‘Born Fire-HOT’으로 꾸며졌다. 르세라핌은 타오르는 불길 속 다섯 여신으로 변신해 ‘핫’한 등장을 알렸다. 오프닝 무대는 ‘핫’의 수록곡으로 채워졌다. 멤버들은 공연장 중앙에 마련된 T자 모양의 돌출 무대를 활용해 오프닝부터 팬들 곁으로 다가왔고, 객석의 함성은 증폭됐다. ‘핫’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수록곡 ‘컴 오버(Come Over)’까지 이어졌다. 첫 월드투어를 위해 갈고 닦은 멤버들의 라이브 실력이 돋보였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로 구성된 공연이었다. 오프닝을 장식한 화려한 불쇼에 이어 실내 공연장의 장점을 적극 활용한 레이저 효과도 시선을 집중시켰다. 삼각형 무대 모양을 반으로 가르는 레이저 효과도 집중도를 끌어올렸다. 

그룹 르세라핌이 19~20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월드투어 '이지 크레이지 핫'을 개최했다. 무대에 오른 멤버 카즈하, 홍은채, 김채원(왼쪽부터). 쏘스뮤직 제공.

두 번째 섹션은 ‘메이크 잇 룩 이지(Make it look EASY)’의 첫 번째 스테이지로 르세라핌이 느낀 무대 뒤의 불안과 고민을 다룬 ‘이지’로 서사를 풀어갔다. ‘이지’는 쉽지 않은 길도 직접 갈고닦아 쉬운 길로 만들겠다는 멤버들의 의지를 담은 곡. 이날 걸크러시하면서도 힙한 여전사로 돌아온 멤버들은 댄서들과 함께 록 버전으로 편곡한 ‘이지’로 새로운 무대를 완성시켰다.

그룹 르세라핌이 19~20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월드투어 '이지 크레이지 핫'을 개최했다. 쏘스뮤직 제공.

다섯 개로 나뉘어 진행된 공연에서 가장 불타오른 건 네 번째 섹션 ‘아임 버닝 핫(I’m Burning hot-REVIVAL)’이었다. 2022년 세상에 르세라핌을 알리기 시작한 데뷔곡 ‘피어리스(FEARLESS)’를 시작으로 정규1집의 타이틀곡 ‘언포기븐(UNFORGIVEN)’, 미니2집 ‘안티프레자일(ANTIFRAGILE)’까지 르세라핌의 히트곡들이 연달아 무대에 올랐다. 

 

르세라핌의 텐션도, 관객들의 텐션도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해당 섹션은 밴드 편곡으로 구성돼 한국 공연을 시작으로 만나게 될 향할 전 세계 피어나들에게도 새로운 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룹 르세라핌이 19~20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월드투어 '이지 크레이지 핫'을 개최했다. 무대에 오른 멤버 허윤진(왼쪽)과 사쿠라. 쏘스뮤직 제공.

따듯해진 기온 탓에 공연장 내부의 온도는 더욱 뜨거워졌고, 공연 중반이 지나자 르세라핌 멤버들의 얼굴도 땀으로 뒤덮였다. 그럼에도 멤버들의 열정을 식을 줄을 몰랐다. 멤버들은 러닝타임 150여 분간 메인 무대와 돌출 무대를 쉼 없이 오가며 안무와 라이브까지 선보였다. 특히 남성 관객들의 우렁찬 함성과 떼창이 공연장의 열기를 한층 달아오르게 했다.

 

‘EASY’로 출발해 ‘CRAZY’를 거쳐 ‘HOT’까지 도달했다. 지난 여정을 무대로 풀어가며 마침내 데뷔 3년 차 르세라핌의 현재를 마주했다. 앵콜 무대를 위해 잠시 무대 아래로 내려갔던 멤버들은 플로어석 뒤쪽에서 깜짝 등장해 놀라움을 안겼다. 허윤진이 메인 프로듀싱에 참여한 ‘미치지 못하는 이유’를 부르며 등장한 멤버들은 첫 팬송 ‘피어나’로 이어지는 감성적인 구간을 통해 팬들과 가까이서 호흡을 나눴다. 

그룹 르세라핌이 19~20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월드투어 '이지 크레이지 핫'을 개최했다. 쏘스뮤직 제공.

멤버들은 각자의 마음을 종이에 적어 무대에 올랐다. 지난 1년간 르세라핌에게 닥친 시련은 녹록지 않았다. 지난해 미국 음악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2024’에서 선보인 라이브 무대로 혹평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하이브와 뉴진스,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간의 갈등에 새우 등이 터졌다. 고난의 시간을 보낸 멤버들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어린 나이에 연예계로 뛰어든 멤버들에게 특히 힘겨운 나날이었다. 허윤진은 당시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지난해 회사 분과 울며 통화를 했었다.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해요? 앞이 있긴 한가요. 뭐가 가짜고 진짜인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했다”면서 “정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넘을 수 없는 벽과 마주했을 때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하나였다. 앞으로 나아가고 노력하는 것. 허윤진은 “지난 1년 동안 다양한 감정선이 생겼다. 형용할 수 없이 감정이 뒤섞였다. 힘들기도 했지만 포기하긴 이르고 억울했다”면서도 “피어나에게도 1년이라는 시간이 쉽지 않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 팬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1년을 버텨냈다. 단단한 마음이 커지는 동안 지금 겪는 시간이 동굴이 아닌 터널이라는 걸 깨달았다. 허윤진은 “피어나의 사랑을 느끼고 멤버들과 더 끈끈해지면서 까마득했던 길의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1년 전 호텔방에서 했던 질문의 답을 이렇게 얻었다. ‘진짜’는 이 공간에 모두 있었다. 우리가 나눈 사랑과 시간은 모두 진짜”라면서 “여러분도 힘든 시간이 올 때면 오늘을 기억해 달라. 지난 1년 동안 우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 이제 우리가 지키겠다”는 말로 팬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2011년 일본에서 데뷔해 2018년 아이즈원을 거쳐 세 번째 그룹 르세라핌을 만나게 된 사쿠라에게도 울컥한 순간이었다. “정말 다양한 공연을 했는데, 이렇게 힘든 공연은 처음이다. 그만큼 너무 재밌고 우리다운 무대였다”고 이틀의 한국 공연을 돌아본 사쿠라는 ‘마지막 아이돌’이 되기 위해 처음 회사에 출근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성공을 위한 욕심만 가지고 왔던 내가 르세라핌이 되고 피어나와 존재할 수 있다는 게 행운 같은 일”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인생의 반 이상을 아이돌로 활동한 그에게 힘이 되어 준 건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나를 빛나게 해준 건 팬분들이다. 너무 흔한 말이지만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 사랑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내 마지막 아이돌이 르세라핌이라서 운이 좋았다. 너무 좋은 팀을 만났다.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막내 홍은채는 “우리가 함께 걷는 이 길이 매번 꽃길일 수는 없겠지만, 우리 노래 가사처럼 가시밭길이 있어 꽃길이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완벽하지는 못해도 최선을 다하는 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기특한 메시지를 전했다. 

 

르세라핌 다섯 멤버도, 팬들도, 그리고 이들의 관계도 힘든 시간을 거쳐 더 단단하게 뿌리내렸다. “피어나 덕분에 행복하다”고 외친 르세라핌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피어나 곁에 있겠다”는 약속으로 이날 공연을 마무리했다.

 

르세라핌은 19일과 20일 양일간 인천에서 월드투어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후 나고야(5월 6~7일), 오사카(13~14일), 기타큐슈(6월 7~8일), 사이타마(12일과 14~15일) 등 일본 4개 도시와 타이베이(7월 19일), 홍콩(26일), 마닐라(8월 2일), 방콕(8월 9∼10일), 싱가포르(16일)로 무대를 옮긴다. 9월에는 북미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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