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관세 시대, 한국 제조업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정 민 법무법인 지평 경영컨설팅센터 리더

 

 2025년, 세계는 다시 ‘고관세의 시대(High Tariff Era)’로 회귀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모든 수입품에 최소 10%의 기본 관세를 적용하고, 주요 교역국별로는 11%에서 최대 41%까지 차등 관세를 예고했다. 한국 역시 당초 25%의 고율 관세 대상국으로 지정됐으나, 지난달 말 협상을 통해 15% 특별협정이 체결되며 일부 완화됐다. 그러나 이 같은 조정은 단순한 세율 협상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글로벌 교역 질서의 구조 자체가 뒤흔들리는 흐름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1930년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은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 장벽을 촉발했고, 대공황의 파장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지금 세계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내세우며 교역 장벽을 높이는 양상은 당시와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9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한 번 글로벌 무역질서가 분열되는 전환의 문 앞에 서 있다.

 

 문제는 한국 제조업의 구조적 취약성이 이 고관세 파고와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공급망 내 높은 수출 의존도, 특정 산업에 집중된 편중 구조, 원자재·기술 수입 의존은 수출 경쟁력 약화로 곧장 이어진다. 실제로 최근 한국 제조업의 구매관리자지수(PMI)는 기준선인 50을 6개월 넘게 하회하고 있다. 수출 주력 산업이 고비용·저효율 구조에 머무는 한, 고관세라는 새로운 외부 변수는 그 자체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위기를 단순한 피해 최소화의 관점으로만 접근해선 곤란하다. 지금은 제조업의 방향성과 경쟁력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할 중요한 기점이다. 달리 말하면, 고관세라는 도전은 오히려 산업 재구조화의 전략적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우선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 제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예측관리와 유연 생산 체계가 핵심이다. 인공지능(AI) 기반 품질관리 시스템, 디지털 트윈 기반 공정 혁신, 공급망 시뮬레이션 같은 기술의 도입이 뒷받침돼야 한다. 동시에 탄소 중립과 친환경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같은 새로운 통상 장벽을 넘기 위한 전략적 대응이기도 하다.

 

 핵심 기술의 내재화와 소재·부품·장비의 자립도도 높여야 한다. 이는 단순히 수입 대체의 문제가 아니다.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생산 거점 다변화, 기술 축적을 통한 제품 고도화가 병행돼야 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첨단화 역량은 국가 산업 생태계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민간 투자와 정책적 뒷받침이 요구된다.

 

 정부의 역할도 단순한 수출 지원이나 관세 협상에서 머물러선 안 된다. 민간의 중장기 전략을 지원하는 산업 전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산업별 맞춤형 연구개발(R&D) 지원, 디지털 전환 바우처, 스마트공장 보급 확대, 공급망 리쇼어링 촉진 등을 아우르는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통상 정책과 산업 전략이 분리되지 않고 연계돼야 한다. 지금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만으로 해결되는 시대가 아니다. 기술-안보-산업의 삼각 구도 속에서 민관이 함께 준비해야 한다.

 

 오늘날 고관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재편을 상징하는 신호다. 그 흐름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하면 산업 주도권은 순식간에 다른 나라의 손에 넘어간다. 과거와 같은 환율 정책이나 수출 다변화만으로는 이 국면을 넘기 어렵다. 결국 구조를 바꾸는 전략, 기술을 내재화하는 정책, 생태계를 설계하는 협력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한국 제조업의 위기는 지금 분명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가 산업전환의 결정적 기회가 될 수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기회를 전략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민관의 의지다. 지금이 바로 산업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시간이다. 이 변화의 흐름을 놓친다면, 또 한 번의 기회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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