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기록부 다운받아서 보여주세요."
최근 밴드 데이식스의 데뷔 10주년 팬미팅에서 ‘갑질’논란이 터졌다. 가족 명의로 티켓을 구했다는 피해자가 입장 과정에서 스태프가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이슈는 온라인 공간에서 순식간에 퍼졌고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다. 소속사 JYP는 입장문을 통해 사과했다. 결국 콘텐츠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피해자가 됐다.
최첨단 디지털 기술이 현실이 된 21세기에도 콘서트 현장에서는 위와 같이 ‘웃픈’ 일들이 계속된다. ‘가짜 티켓’에 대한 우려 탓이다.
‘티켓 실명제’처럼 극단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의견도 있지만,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광클에 실패해서’, ‘더 좋은 자리에서 보고 싶어서’, ‘함께 가는 친구와 자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등등 여러 이유로 2차 구매 형태로 티켓을 구해야 하는 수요가 존재하는 이상 규제를 강하게 할수록 거래는 더 깊숙한 음지로 숨어든다. 말 그대로 ‘암표’가 되는 악순환이다.
규제 일변도 정책은 "큰 돈 들여 어렵게 구했는데 이 티켓으로 공연장에 못 들어가면 어떻게 하지?"라는 2차 티켓 구매자의 근원적인 공포를 해소할 수 없다. 범죄에 대한 리스크가 무방비 상태에 가깝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인터넷 사기 피해 중 1위는 '티켓·상품권 사기'다. 전체의 37.93%나 된다. 입금 유도 후 잠적하거나 위조 이미지 보내기, 로그인 아이디를 준다고 하고 돈 받고 차단하기 등이 대표적 수법이다.
네이버 카페(39.8%), 카카오톡(19.7%), X(옛 트위터, 11.6%) 등 커뮤니티 기반의 온라인 공간이 티켓 사기범의 주 무대다. 원시적 형태의 온라인 거래 방식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방통위는 실제 티켓을 받은 후 입금하기와 안전결제 시스템 활용, 안전하게 티켓을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만 거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해외 사례를 보자. 가장 큰 음악 시장인 미국과 유럽에서는 티켓 재판매 규제 정책의 부작용을 체감 후 허용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꿨다. 일부 국가는 가격 상한선을 두거나 영업 목적으로 재판매하는 것을 규제한다.
일부 국가에서 재판매 자체를 불법으로 규제하고 있지만, 그곳에서도 티켓 2차 거래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양지에서 거래되던 티켓은 더 어두운 곳에서 거래되고 구매자의 리스크만 커졌다. 말 그대로 ‘암표’가 돼버렸다. 내국인에 한해 적용되는 규제는 국경이 사라진 티켓 재판매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전 지구적으로 소비자는 2차 시장의 존재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관련 시장도 계속 성장 중이다. 규제 일변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무턱대고 양성화를 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매크로 등을 이용한 대규모 시장질서 교란 행위는 강력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 엄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획일적인 금지보다는 플랫폼 중심의 자율 규제가 더욱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다. 정부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과 기준을 마련하고, 업계는 이를 기반으로 기술적 역량과 현장 경험을 반영한 책임 있는 자율 규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시장의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는 균형을 도모할 수 있다.
티켓 2차 거래자 증가에 따른 문제나, 이벤트 주최사의 반발 등의 요소는 적절한 규제 및 관리 정책, 과세 정책 도입, 예매처의 적극적 기술 투자, 주최사 및 예매처 협업을 통한 구매자 보호 및 수익 분배 등을 통해 보완이 가능하다.
1차 티켓 판매와 2차 티켓 거래 플랫폼을 함께 서비스하며 콘서트 프로모터, 아티스트들과 수익을 공유하는 해외 사례도 있다. 이벤트 주최자가 행사에 대한 2차 거래 활성화 옵션으로 2차 거래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티켓 2차 거래 가격도 제한하게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2차 거래에 관여하게 하면 된다.
K팝, 프로야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단군 이래 최고 수준이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하고 노를 저으려면 배를 손봐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티켓 재판매 문제는 주요 관심사다. 정책에 대한 리액션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X(구 트위터)에 국민의 현장감 있는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포스팅하자, '아이돌 콘서트 본인 확인 없애주세요'란 인용 글이 달렸고 무려 1만 3000개의 공감을 얻었다. 국회의원들도 관련 법안을 발의하며 공론화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담론의 중심이 ‘규제’ 일변도라는 것이 문제다. 2차 티켓 거래 시장을 단순히 ‘막아야 할 것’으로 보는 나이브한 인식이 지배적이다. 처벌 수위를 높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는 실재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하지 말자. 2차 티켓 시장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미래를 위한 제도 설계의 시작이다.
전경우 문화사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