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맞은 노인일자리사업] ② 지식·경험 살려 인생 2막…“과거와 현재 잇는 역할 큰 보람”

② 개인·국가에 생기 불어넣는 노인일자리
-시니어클럽 지역문화기록가, 지역 생활 찾아
-3개월간 20여점 보존가치 인정…기록 공유
-제주사랑마씸, 개인삶 담은 영상 자서전 제작
"어르신 문화기록 주체돼 사회적 기반 단단해질 것"

지난 20년간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은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발전을 거듭하며 우리 사회 노인들의 경제적 안정을 지원하고 활기찬 노년생활을 구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노인일자리 사업은 현재 다양한 유형과 연령층을 아우르며 올해는 약 110만개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규모로 확대됐다. 노인의 소득 증대뿐 아니라 건강과 사회적 관계 개선 등 삶의 여러 영역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며 경제·사회적·심리적 토대가 되고 있다. 본지는 노인일자리 사업의 20년 성과를 ▲노인일자리, 얼마나 성장했나 ▲개인·국가에 생기 불어넣는 노인일자리 ▲노인일자리, 앞으로 나아갈 길은 등 3회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주> 

 

 

남해시니어클럽 소속 지역문화 기록가인 류동갑(67, 왼쪽), 김지수(67)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지역문화 기록가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노인일자리 중 하나로, 고령자의 생애 경험이나 지역의 생활사, 풍습, 잊혀가는 장소에 얽힌 이야기 등을 지역 주민들에게 직접 듣고 조사·기록하는 활동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제공

 “한 번은 마을 이장과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왜 이제 왔냐. 마을에 소멸된 게 많다. 지금이라도 남아있는 것을 보존해야 된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장과 주민들이 지역에 있는 문화 유적지가 파손된 것을 너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곤 이들이 안내한 장소로 갔더니 고인돌이 있어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큰 관심받지 못했던 지역 내 역사와 문화재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이 활동에 무척이나 보람을 느낍니다.” 

 

 올해로 67세인 김지수씨는 자신을 지역문화 기록가라고 소개했다. “마을에서 보관 중인 자료를 확인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머리에는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있었지만, 얼굴에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간자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이 드러났다.

남해시니어클럽 소속 지역문화 기록가들이 조사한 기록물 조사 카드.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제공

 김씨를 포함한 8명의 남해시니어클럽 소속 시니어 지역문화 기록가는 남해군의 읍·면 곳곳을 다니며 사라져 가는 지역 역사의 흔적을 찾는 일을 한다. 지역문화 기록가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노인일자리로, 고령자의 생애 경험이나 지역의 생활사, 풍습, 잊혀가는 장소에 얽힌 이야기 등을 지역 주민들에게 직접 듣고 조사·기록하는 활동을 한다.

 

 김씨도 국가기록유산포털 등 기록물 발굴·보전 사이트를 통해 남해 지역의 문화적 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찾고 문화적 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찾아 나선다. 지역문화 기록가들은 발견한 민간 기록물을 기록물 조사카드에 빼곡히 기록한다. 기록물은 대체로 사진을 포함한 마을 회의록, 물품, 졸업장과 같은 개인, 단체의 다양한 유형물들이다. 

 

 지역문화 기록가로서 필요한 자질에 대해 물어보자 그는 “지역문화 기록가들은 발견된 유형물에 얽힌 이야기를 마을 주민을 통해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라며 “마을 이장과 협조해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노하우라면 노하우”라고 웃으면서 답했다.

 

 이전에는 기록물을 찾아다녔다면 이제는 유형물을 기록해 달라고 의뢰도 종종 들어온다. 또 다른 지역문화 기록가인 류동갑(67)씨는 “마을에 있는 비석들과 그 내용을 전부 파악해 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도 있다”며 기억을 떠올렸다. 류씨는 기록가로서 비석과 내용을 확인하던 중 자신이 굉장한 기록을 발견한 사실도 깨달은 적이 있다. 비석에는 고종 때부터 일제 시대까지 우리나라의 서낭과 지역을 위해 노력한 분들의 행적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문화 기록가들이 꼼꼼히 작성한 기록물 조사카드는 남해군청 행정과 후생팀 기록실로 인계돼 그 보존가치를 평가받는다. 보존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기록물은 남해군기록관에 기증된다. 지역문화 기록가들이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150여점의 기록물을 발견했다. 기록물들은 아직 분류 작업 중에 있지만 현재까지 보존가치가 인정된 기록물은 20여점에 달한다.

 

 기증된 기록물은 남해군기록관의 역사자료 전시코너에 전시돼 주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소개된다.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에 게시되거나 책자로도 발간되기도 한다. 세종시의 마을기록문화관 다담 홈페이지에 마을의 옛 모습과 변화상을 사진, 글 등의 게시글도 지역문화 기록가들의 활약이다. 

 

 박종택 남해군청 후생팀 연구보조원은 “군청에서는 기록실에 모아둔 기록물을 전시하는 전시회를 운영한다”며 “올해 지역문화 기록가의 활약을 통해 사람들이 ‘아 이때 이런 곳도 있었지’ 하면서 남해군의 다양한 옛 기억을 회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류씨는 “우리 지역의 문화적 기록물을 한 번 더 알아가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어 활동 자체가 매우 유익하다”며 “옛 시절과 지금 시절을 비교하며 후손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중간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제주시니어클럽 소속 제주사랑마씸의 한 참여자가 영상 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사랑마씸은 카메라와 편집기를 활용해 개인의 삶을 영상으로 담는 노인일자리 활동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제공

 제주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제주사랑마씸 노인역량활용 사업단은 또 다른 형태의 기록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바로 영상 자서전 제작이다. 올해 처음 도입된 이 사업은 시니어들이 카메라와 편집기를 직접 다루며 개인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활동이다.

 

 강경호(68)씨도 대학에서 인터넷 강의 영상 제작을 담당한 경험을 살려 사업에 참여했다. 그는 “한 사람의 인생을 영상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다만 초기 단계인 만큼 현실적인 어려움도 존재한다. 영상 자서전이라는 주제가 다소 무겁게 느껴져 대상자 섭외에 어려움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니어들은 팀을 이뤄 기획·촬영·편집을 분담하고 부족한 부분을 상호 보완하며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남해군의 시니어 지역문화 기록가가 마을의 기억을 종이와 사진 속에서 찾아낸다면 제주의 제주사랑마씸은 카메라와 편집기를 활용해 개인의 삶을 영상으로 재현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사업 모두 노인들의 경험과 역량을 사회적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둘 다 노인역량활용사업(구 사회서비스형)에 속한다.

 

 특히 두 모델은 ▲세대 간 소통 증진 ▲지역 정체성 강화 ▲노인 일자리의 창의적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단순 반복 업무 중심이었던 노인 일자리에서 벗어나 어르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는 창의적·전문적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관계자는 “두 사업은 노년의 삶을 단순히 돌봄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지식과 경험의 주체로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면서 “더 많은 시니어들이 지역과 개인의 이야기를 스스로 기록하고, 이를 후세와 공유할 수 있다면 한국 사회의 문화적 기반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르신들이 문화 기록의 주체로 나서는 이러한 사업이 지역 문화의 지속 가능성과 세대 간 연결을 동시에 실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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