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 5명 중 1명이 가상자산 거래소 계좌를 갖고 있을 정도로 국내에서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는 급속히 증가했다. 하지만 가상자산의 익명성과 은행을 거치지 않으면서도 신속히 대규모 결제가 가능한 탈중앙화 구조로 불법 거래에 악용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면서 국제적 문제로 떠올랐다.
28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5곳의 가상자산 거래소의 투자자 수는 1825만명, 보유 가상자산 시가평가액은 104조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은 17조2000억원으로,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한 자본시장(15조3000억원) 규모를 이미 넘어섰다. 명실공히 우리나라 국민 20%가 참여하는 대표적인 자산 투자시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최근에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달러화나 금 등 특정 자산에 가치를 고정한 가상화폐를 말하는데,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3월 말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2300억달러(약 33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2030년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가 2200조원 이상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 대부분은 달러 기반으로, 기축통화와 연계돼 신뢰도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게다가 통화와 유사한 지급결제 용도로도 쓰일 수 있어 스테이블코인이 가상자산 시장의 주류로 자리를 꿰차는 모습이다.
하지만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산으로 외환 규제를 우회한 불법 거래가 더욱 쉬워지고 통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일반적으로 퍼블릭·비허가형 블록체인에서 발행돼 유통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불법적인 자금 세탁이나 외화 유출을 감시하고 차단하는 것이 어렵다. 누구나 익명으로 참여하고 활동에 제약 없는 퍼블릭·비허가형 블록체인에서는 기존과 같은 중앙집중형 규제가 효과적으로 수행되기 힘들다. 또 거래 기록의 투명성만 확보될 수 있을 뿐 해당 거래 기록이 누구의 거래 기록인지에 대한 확인도 쉽지 않다.
한국은행은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주요 이슈와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이 거래소로부터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비수탁형 개인지갑으로 이전된 다음에 이뤄지는 자금 이동에 대해서는 추적을 책임지는 주체가 불분명하다”며 “비수탁형 지갑은 본인 확인 절차 없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데다 탈중앙화 거래소 등을 통해 거래가 이뤄질 경우 자금 출처 확인 등 자금세탁방지 규제 적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비수탁형 개인지갑의 익명성과 스테이블코인의 무기명성이 결합하면 신원 노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여러 사용자의 가상자산을 합쳐 섞은 후 이를 다시 분산 송금하는 블록체인 믹서(mixer) 등을 이용하면 스테이블코인 송금인과 수취인 지갑 간의 추적이 더욱 어려워져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이 국가 간 지급에 활발해지면 비수탁형 개인지갑을 통해 자금 해외 도피·은닉, 과세 회피 등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믹서에 대한 기술 중립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불법 거래를 용이하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고 말했다.
유은정·노성우 기자 viayou@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