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일은 젊은 직원들이 다 하는데… 고연봉 임원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여서 박탈감을 느낄 때가 있죠.”
30대 회사원 A씨의 한숨이다. 정년을 앞둔 임원이 업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여러 생각이 든다는 그는 “딱 아버지 연세라 죄송스러우면서도 야속하다”고 털어놨다. A씨는 최근 정년연장에 관한 기사를 보고도 그 임원이 떠올라 속이 답답해졌다고 덧붙였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정년연장 논의가 급물살을 탄 가운데 그로 인해 세대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10년 전 정년연장 당시 청년 고용이 15% 이상 줄어든 실제 사례도 있다. 그나마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임을 의미하는 초고령사회에 우리나라가 올해 진입한 현실을 고려하면 정년연장의 필요성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 결국 점진적 제도 변화 및 보완책으로 젊은 세대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우리 사회의 중론이다.
최근 정년연장 논의에 불이 붙은 배경에는 법정 정년과 공적연금 수급 시점 사이의 소득 공백이 자리하고 있다. 은퇴 후 3∼5년간 근로소득 없이 지내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정부 차원의 소득 보전책 마련이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우리나라 인구의 약 18.6%(954만명)를 차지하는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3년생)가 지난해부터 은퇴 연령에 들어서면서 이 문제가 더 부각됐다.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부족도 한 요인이다. 현재 추세로는 2039년 3000만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란 국가데이터처(전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도 있다. 반면 고령 인구는 올해 처음 1000만명대를 기록했고 그 비중은 2036년 30%, 2050년 4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나이를 늘려 중·장년층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는 것이다.
문제는 정년연장이 청년층 고용 감소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2016년 정년 60세 의무화 이후 실제로 확인한 변화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60세 정년 의무화가 청년 및 장년고용에 미친 영향’ 연구에 따르면 법 개정 이전(2010∼2012년)과 시행 시점(2016년)을 비교한 결과 청년 고용이 약 16.6% 감소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방안’ 보고서를 봐도 고령 노동자가 1명 늘어날 때 청년 노동자는 약 1명(0.4∼1.5명) 줄어든다고 나왔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처럼 청년층 선호도가 높은 사업장일수록 정년연장에 따른 청년고용 감소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정년연장에 따른 고용 증가 효과도 점차 약화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은 보고서에 따르면 정년연장으로 인한 고령층 고용률 상승은 2016∼2019년 2.3%포인트에서 2020∼2024년 1.3%포인트로 낮아졌다. 법적 정년연장 효과를 기업이 조기퇴직유도 등 인사정책으로 상쇄한 것으로 분석됐다.
안 그래도 국내 기업들은 성정 정체가 장기화되면서 신규 채용을 꺼리고 있다. 올해 1분기 임금근로 일자리 중 신규채용은 총 546만7000개로 2018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었다. 전체 일자리에서 신규채용이 차지하는 비중도 26.6%까지 떨어져 최저치를 기록했다. 산업계 전반에서 추진 중인 인공지능(AI) 도입도 청년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정년연장이 시행되면 일자리를 두고 세대 간 경쟁이 더 심해질 것이란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정년연장이 고령층에 대한 젊은층의 불만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관련 업계 관계자들뿐 아니라 노동 전문가들은 획일적 정년연장보다는 단계적이고 탄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정년연장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각종 상생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