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자사 프리미엄 차량용 프로세서 ‘엑시노스 오토’를 독일 완성차 업체 BMW의 차세대 전기차 모델인 ‘뉴 iX3’에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전장(차량용 전자·전기장비) 사업은 이재용 회장이 직접 미래 핵심 성장동력으로 낙점한 분야로 전방위적인 지원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2009년 BMW와 전기차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부터 꾸준히 긴밀한 협력을 지속해 왔다. 2013년 출시된 BMW 최초의 순수 전기차 i3를 시작으로, i8(2015년), iX·i4(2021년), 뉴 i7(2022년) 등 BMW가 출시한 전기차에 삼성SDI의 고성능 배터리가 탑재됐다.
삼성은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그룹 차원의 핵심 성장 동력 중 꼽고 다양한 계열사에서의 시너지를 꾀하고 있다. ▲삼성SDI 전기차 배터리 ▲삼성디스플레이 차량용 패널 ▲하만 카 오디오·디지털 콕핏 ▲삼성전자 차량용 반도체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BMW 뉴 iX3에 공급되는 엑시노스 오토는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차량용 엔터테인먼트(IVI) 프로세서다. 엑시노스 오토는 운전자에게 실시간 운행정보를 제공하고 고화질 멀티미디어 재생, 고사양 게임 구동 등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성과로 삼성전자가 미래 모빌리티 전환의 핵심인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의 주요 반도체 공급 파트너로 입지를 굳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엑시노스 오토 사업을 맡고 있는 시스템LSI사업부는 최근 커스텀 시스템온칩(SoC) 개발팀을 신설하며 빅테크뿐 아니라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도 맞춤형 칩 수주 확대에 나섰다.
이번에 엑시노스 오토를 장착하게 된 뉴 iX3은 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로 BMW의 차세대 전동화 플랫폼 노이어 클라쎄(Neue Klasse)가 적용되는 첫 번째 양산형 모델이다. 올해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으며, 국내 시장에는 내년 하반기 출시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뉴 iX3를 시작으로 향후 BMW의 차세대 전기차 모델과 내연기관차 모델에도 엑시노스 오토 칩을 공급할 예정이다. 특히 차세대 7 시리즈 모델에는 가장 최신 제품인 5나노(㎚·1㎚=10억분의 1m) 공정 기반의 ‘엑시노스 오토 V920’이 탑재될 것으로 전해졌다.
뉴 iX3 등에 탑재되는 엑시노스 오토 V720, V820, V920 등은 전작과 달리 FUSA(기능안전성) 검증을 받았다. 또한 멀티미디어 및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신경망처리장치(NPU) 성능을 대폭 강화해 BMW가 지향하는 전동화·SDV 중심의 미래 모빌리티 비전의 핵심 공급 업체로 선정됐다.
특히 엑시노스 오토 V920은 영국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ARM의 최신 전장용 CPU 10개가 탑재된 데카코어 프로세서로, 기존 제품 대비 CPU 성능은 약 1.7배, GPU 성능은 최대 2배, 인공지능(AI) 연산 성능은 2.7배 강화했다. 고성능·저전력의 D램(LPDDR5)을 지원해 최대 6개의 고화소 디스플레이와 12개의 카메라 센서를 동시에 제어한다.
실제로 BMW는 올해 9월 뉴 iX3를 공개하며 기존 대비 20배 높은 처리능력을 갖춘 4개의 고성능 컴퓨터, 이른바 ‘슈퍼 두뇌’를 탑재했다고 강조했다. 이후 자동차 업계에서는 뉴 iX3의 오디오 및 비디오 처리 능력을 포함한 IVI 성능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슈퍼 두뇌 중 하나인 엑시노스 오토가 자율주행 및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안정적인 성능 및 처리 능력을 보인 결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앞서 2019년과 2021년에 아우디와 폭스바겐에 엑시노스 오토 칩을 공급한 바 있다. 이번에 BMW 공급 성과로 진입 장벽이 높은 독일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또한 삼성전자는 최근 자회사 하만을 통해 글로벌 전장 업체인 독일 ZF 프리드리히스하펜의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사업을 인수했다. 삼성전기가 강화하고 있는 ADAS용 부품 사업과의 시너지는 물론, 솔루션 분야에서도 전장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미래 모빌리티 사업은 이 회장이 동맹군 확보를 위해 직접 세일즈에 뛰어들 정도로 각별히 공을 들이는 분야다.
이 회장은 올해 3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BYD(비야디) 본사를 방문해 핵심 관계자들을 만나 전장 관련 협력 논의를 진행했다.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 가운데 하나인 샤오미의 베이징 자동차 공장을 찾아 레이쥔 샤오미 회장도 만났다.
올해 11월에는 한국을 찾은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과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는 최주선 삼성SDI 사장과 크리스천 소봇카 하만 최고경영자(CEO) 등 전장 사업 관계사 경영진이 동석해 협력 관계를 다졌다. 삼성과 벤츠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장 등 기존 파트너십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은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과도 지속적으로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2022년에는 방한한 집세 회장과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만났고, 올해 초에는 중국발전포럼에서 집세 회장과 회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장 사업은 이 회장의 첫 대형 인수합병(M&A)인 하만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이 회장은 2016년 8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하만을 인수했다. 이후 하만은 오디오·전장 제품을 넘어 디지털 콕핏, 인포테인먼트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지난해 하만의 영업이익은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1조2000억원을 돌파하며 최대 실적을 다시 한번 경신할 전망이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