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바뀌는 세상] 대리운전자는 운전대조차 잡질 못했다…현실이 된 AI∙자율주행

테슬라 유튜브에 다양한 운전자들의 FSD 경험기가 올라와 있다. 테슬라 유튜브 갈무리

 

이미 많은 이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AI(인공지능)는 지난 한 해 동안 병원, 관공서, 전시장 등 사람들의 일상 동선 곳곳에 조용히 침투하며 업무 방식을 바꿔놨다. 심지어 도로 위에서도 자율주행이 본격 등장하면서 자동차 운전마저 바뀔 태세다. 가상의 인물 김현상 씨(43)와 이상미 씨(38)의 일상을 통해 AI가 바꾼 2026년 미래를 예상해봤다. 

 

◆테슬라 ‘감독형 자율주행’, 대리운전 풍경도 바꾸다

영동대교 방향으로 향하는 도로 옆 골목에 흰색 전기차 한 대가 미등을 켠 채 서 있었다. 대리운전 기사 김현상 씨는 평소처럼 조수석 문을 열어 손님에게 먼저 타라고 한 뒤 운전석에 올랐다. 운전석 시트를 맞추고 룸미러 각도를 조정하려던 순간, 계기판 대신 중앙 디스플레이 화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경로 안내와 주변 차량이 실시간으로 그려진 그래픽 위에 ‘자율주행 준비 완료’ 문구가 떴다.

 

“기사님은 그냥 앉아만 계시면 돼요.” 뒷좌석에 앉은 차량 주인은 담담하게 말하고 안전벨트를 맸다. 김 씨는 반사적으로 운전대 위에 손을 올렸지만 이내 차량이 스스로 가속하고 차선을 따라 나아갔다. 신호 대기, 차선 변경, 좌회전까지 대부분의 조작은 차량이 알아서 처리했다. 김 씨의 역할은 운전석에 손을 얹고 브레이크 위에 발을 댄 채 주변을 살피는 일에 그쳤다.

 

김 씨는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이러다 대리운전도 필요없는 세상이 오면 나는 무슨 일을 찾아야 하지’라는 생각까지 들면서 정말 소름이 돋았다”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만에 하나 자율주행 시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등 제도가 완비되면 대리운전기사란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현재 국내에서 제공되는 테슬라 자율주행 기능은 ‘감독형(슈퍼바이즈드)’으로 법적으로는 운전자 보조 수준에 머문다. 운전자는 언제든 개입할 준비를 해야 하고 사고 발생 시 책임 역시 운전자에게 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운전은 AI가 하고 사람은 비상 상황을 감시하는 역할로 밀려난 것 아니냐”는 불안과 기대가 교차한다. 김 씨는 동료 대리기사와 이런 걱정을 공유한 적이 있다. 김 씨는 “전에는 졸음이 쏟아질 정도로 피곤한 날도 많았는데 요즘은 졸리지는 않지만 긴장이 다른 방식으로 계속된다”며 “사고가 나면 ‘내가 운전했다’고 해야 하는지, ‘차가 운전했다’고 해야 하는지 헷갈린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AI가 스며든 일터…2026년은 “AI가 기본값”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콜센터. 이 병원은 지난해 8월부터 상담 전화를 실시간 문자로 전환해 저장·분석하는 AI 음성인식(STT) 시스템을 본격 가동했다. 상담원으로 일하는 이상미 씨는 “예전에는 전화 내용을 일일이 메모하고 나중에 정리해야 했지만 지금은 통화 내용이 자동으로 텍스트로 남아 우리는 내용을 확인하고 중요한 부분을 체크하는 쪽으로 일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상담 업무가 ‘받고 말하는 일’에서 ‘읽고 판단하는 일’로 재편된 셈이다.

 

이 씨 역시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이미 자동 ARS가 일상화되면서 예전처럼 정신없이 일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이 씨는 “동료들과 우리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면서 “아무래도 사람이 할 수밖에 없던 일을 점점 AI가 대신하는 세상으로 변화하는 게 너무 빠르다 보니 상담원조차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이 솔직히 든다”고 말했다. 

 

실제 이 씨 역시 곳곳에서 이미 쓰이고 있는 생성형 AI의 존재감을 체험하고 있다. 오픈AI의 챗GPT로 자신의 블로그에 쓸 이미지를 생성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몇 초도 되지 않아 이 씨가 요구하는 그림을 만들어주는 챗GPT로 최근에는 음악도 작곡해서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Gemini)’ 이야기도 들었다. 검색창에 질문을 치면 링크 목록 대신 요약·비교·분석이 먼저 도착하고 메신저 대화 속 일정·내용을 AI가 자동으로 정리해준다는 이야기였다. 이 씨는 이직을 준비 중이기도 한데 이런 AI 활용 기술을 익혀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 중이다. 이 씨는 “제가 듣기로는 기업 인사담당자들 사이에서는 ‘기본 역량이 엑셀 활용 능력에서 AI 도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로 옮겨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AI와 자율주행이 “일자리를 단순히 없애기보다는, 같은 일을 다른 형태로 쪼개고 재배치하는 경향이 크다”고 진단한다. 대리운전 기사는 운전자가 아니라 감시자이자 안전요원이 되고 상담원은 말하는 사람에서 텍스트를 읽고 판단하는 사람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AI 전문가는 “AI 시대에 사라지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직업 속에 숨어 있던 세부 작업들”이라며 “같은 직업이라도 어떤 사람은 AI를 활용해 더 큰 역할을 맡게 되고 또 어떤 사람은 단순 감시·보조 역할로 밀려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필요한 것은 막연한 공포나 낙관이 아니라, 어떤 일을 AI에 맡기고 어떤 판단을 인간에게 남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라며 “2026년은 그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해의 질문은 더는 “AI가 사람 일을 빼앗을 것인가”가 아니다. AI가 ‘기본값’이 된 사회에서, 사람에게 남겨야 할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지를 묻는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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